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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1.10.1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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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토요일. 길을 나섰다. 밥을 사 준단다. 굉장히 맛있는 밥집을 찾았다고. 밝은 목소리엔 개선장군 같은 자부심이 묻어 있다. 픽 웃음이 났다. 처음으로 일하고 대가를 받아 본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토요일이면 집으로 귀환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리던 녀석이 시월 첫 주 찾아온 달콤한 연휴를 반납하고 친구들과 첫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부나 하지 무슨 알바냐고 역정을 내던 남편도 아이의 성화에 웃고 만다.

옛 고도인 공주와 부여거리는 온통 백제 문화제 홍보물로 부산하게 들떠 있었다. 곳곳에서 애쓴 흔적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 수고로움에 고마웠다. 축제를 통해 얻는 경제효과도 있지만 지방마다 잠재된 문화를 펼쳐내어 함께 즐기고 지속적으로 계승해 나가는 데 의미 있으니 말이다.

아이 안내로 찾아간 음식점은 꽤 근사했다. 한옥의 멋을 한껏 살린 데다 길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 고즈넉하니 마음에 들었다. 창으로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저녁불빛이 따스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분위기상 높은 분들이 오는지 조명이 화려한 큰 방 안에 차려진 밥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방은 주방대로 동동걸음이고 개량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은 이것저것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그냥 갈까 하다 그래도 아이에게 끌려온 터라 남편이 식사가 되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두 번 더 물었지만 그들은 각자 바빴다. 아이 기대를 허물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냥 식당을 나왔다.

특별한 사람들만 오는 곳인가 보다 했더니 교수님과 회식도 하고 친구들과 저녁 먹기도 했는데 그땐 굉장히 친절했다며 무척 속상해 했다. 바빠서 그런가 보라고 아이를 다독였지만 속으론 은근히 부아가 났다.

결국 축제가 열리는 공원 가까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차장엔 일본어로 된 안내문이 붙어 있는 버스들도 두어 대 있는 걸 보니 외국 관광객들도 찾은 모양이다.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는데 방석만 세 개를 내주었다. 음식을 주문해 놓고 멀뚱하니 않아 있으려니 참 지루했다.

주변에 식사하는 손님들이 있으니 떠들 수도 없고 창밖만 내다보는데 또 다른 가족들이 들어온다. 그들도 우리처럼 난감한 모양이다. 남자가 불만을 터트린다. 상이라도 놔 주든지. 지나가던 종업원이 퉁명스레 한마디 한다. 주문하시면 상에 차려 나온다고. 바빠서 늦으니 기다리란 말도 없다.

차 한잔 마시며 기다리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어 다섯 점에 평범한 나물 몇 가지 얹어 먹은 저녁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잘 먹었다는 생각은 어디 가고 괜히 속이 상했다.

축제 마지막 행사가 진행되는 광장에서 옛 백제인이 되어 아쉬운 마음을 달래보지만, 씁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바쁜 건 이해하지만 몸에 밴 친절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준비한 수고로움이 한순간 작은 불친절에서 평가절하될 수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방문한 외지인은 모두 홍보대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남겨두고 돌아서는 밤 마음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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