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사 박문수로 체면 세운 박물관
어사 박문수로 체면 세운 박물관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10.04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천안박물관은 특별전 할 때만 이름값을 한다. 복제품과 모형이 판을 치는 박물관에 모처럼 진품이 전시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2008년 9월 박물관이 개관될 때 고령 박씨 문중에서 기증한 유물이 이제야 대중 앞에 선을 보인 것이다.

1723년 박문수가 32세 나이로 과거 급제하던 때 답안지가 눈에 들어왔다. 최종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33명 중 26등), 수많은 사람이 응시했을 소과에서 통과돼 대과의 초시·복시를 거쳐, 왕 앞에서 전시(殿試·최종 석차 매기는 시험) 치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왕인 경종이 “내가 천하를 다스리는데 유연한 도(道)로써 하고자 한다”며 의견을 내라고 했다. 그의 친필을 보니 288년 전 긴장된 얼굴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 가던 박문수를 직접 대하는 기분이다. 진품을 앞에 뒀을 때나 느끼는 감격이다.

천안박물관 전시물은 대부분 복제품이다. 특히 2층 천안고고실은 ‘가짜’들로 채워져 있다. 백석동·두정동·청당동·용원리·화성리에서 나온 유물이라고 전시한 것들이 모두 복제품이다. 복제 수준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박물관 측이 복제품임을 밝히지 않아 관람객은 이를 알지 못한다. 진품은 국립공주박물관 등 여러 곳에 있다. 몇 달 전 특별전을 통해 ‘진짜’ 유물들이 출토지인 천안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을 뿐이다.

천안역사실의 국보 2개, 성거산 천흥사동종(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북면 출토 보협인석탑(동국대박물관 소장)도 역시 가짜다. 바로 옆 천안삼거리실. 교통의 요지였던 천안의 정체성을 전하는 곳이다.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형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1층 교통통신실, 이름부터 낯설다.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한 각종 가마가 전시돼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천안박물관은 온·습도 관리 등 전시품 보존을 위한 배려가 필요 없다는 말까지 있다. “복제품·모형투성이인데 무슨 보존 설비가 필요하냐”는 소리다.

지난 여름 ‘천안, 근대를 말하다’ 기획전이 열렸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00년~50년대 근대자료를 선보였다. 물론 모두 진품이었다. ‘천안동일백화점’ 연말연시 광고지에 대매출기간(바겐세일) 경품이 소개됐다. 1등 상품은 발재봉틀. 당시 어머니들이 가장 갖고 싶어했던 물건이 무엇인가 금세 알 수 있었다. 1926년에 태어난 한 천안 시민의 천안공립보통학교 통지표(성적표)가 전시됐다.‘수·우·미·양·가’ 눈에 익은 성적이 매겨져 있다. 어떤 복제품보다도 값진 유물이 아닐 수 없다.

천안박물관이 개관 3돌을 맞았다. 이젠 뒤를 돌아보며 앞날을 설계할 시점이다. 언제까지 ‘복제품 박물관’ 오명을 간직할 셈인가. 공주박물관 등에서 진품을 빌려주겠다는데도 안 빌려 온 천안박물관이다. 이젠 이들 유물을 장기 대여할 준비를 해야 한다. 국립박물관 유물 수장고에 틀어박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천안 유물들도 찾아와 전시해야 한다.

천안박물관 전시품에선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 박물관이 놀이터일 수만은 없다. 대형 장난감인 증기기관차가 가장 인기 끄는 전시품이어서야 되겠느냐. 차분하게 박물관 개혁을 준비하자. 전시 콘셉트도 다시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 2년 동안 잠재운 박물관운영위원회를 활용할 때가 됐다.

2년 후엔 천안에서 국제적 행사인 천안웰빙엑스포가 열린다. 그때도 가짜들만 보여 줄 셈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