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도가니’국회가 쓸어담아야 할텐데
‘분노의 도가니’국회가 쓸어담아야 할텐데
  • 한인섭 <사회부장>
  • 승인 2011.10.0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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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영화 ‘도가니’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은 ‘사회복지’와 ‘학교’라는 허울을 쓴 이들의 몰염치함만 보여준 게 아니다.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실정법’이라는 처벌장치를 어떻게 딛고 일어섰는지도 잘 목격하게 한 사건이다.

발생 7년 만에 입법, 사법, 행정부를 모두 흔들 정도의 ‘에너지’를 지닌 사건이 그동안 왜 철저히 외면당했었는지 일련의 과정을 성찰하게 한 사건이기도 하다. 결국 대중들은 관객 100만명 돌파라는 방식으로 문제의 본질에‘분노’를 표현했다.

영화를 본 이들이 1차적으로 분노했던 것은 우선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성폭행 가해자인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재활교사, 생활교사 4명은 1,2심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풀려났다. 생활교사 1명만 징역 6개월을 복역했을 뿐이다.

이들 대부분 전과가 없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였다. 1심 재판과 달리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합의서가 제출됐기 때문이다. 실형이 선고됐던 가해자들은 이런 이유로 대부분 감형과 함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항소심 재판을 담당했던 재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건에 대한 많은 고심을 했지만,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 1심에서 합의서가 제출됐다면 종결됐을 사건이다”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사건 일선에서 1심 공판을 담당했던 검사조차 “치가 떨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소회를 남겼을 정도이다. 항소심 재판 결과로만 봐도 국가 형벌체계와 국민정서는 엄청난 간격이 존재한다.

그래서 국회를 중심으로 장애인 성폭력 문제에 대해 친고죄 폐지와 공소시효 폐지 논의가 재개됐다. 일명 ‘도가니 법’이다. 합의나 반성 등의 이유로 사법부가 감형을 결정하는 양형기준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영화에서는 ‘전관예우 변호사’의 역할이 초점이 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건에서도 친고죄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존재한다면 ‘봐 주기 판결’ 논란은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항거 불능’ 요건을 적용해 성폭행 상황에서 ‘반항의 억압’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일도 사라져야 할 부분이다.

국민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사건 주모자들이 학교에 복귀한 점도 그렇다. 법원의 선처를 받았든, 피해자와 합의를 했든 사건 주모자들은 학교에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학교장을 비롯한 범죄자들이 다시 족벌경영 체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또 한 차례 분노한 것 아닌가.

이들의 임금이나 허투루 써 댈 수 있는 자금까지 세금을 퍼붓고 있는 게 현행 사회복지관련 법체계이다. 2007년 8월 국회에 제출됐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당시 제출된 법안에는 사회복지법인의 보조금 횡령, 인권침해행위 등 비리를 저지른 임원 배제 등 운영 투명성과 임원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다. 인화학교 사태와 같은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사문화됐다. 이번 일을 계기로 보건복지부와 국회가 다시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그러나 국회가 당시 보였던 무관심이나 반대론자들의 논리적 근거에 비해 사회적 피해와 치른 비용은 너무 컸다.

일부 의원들이 관련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고, 국정감사 등 국회 차원에서도 ‘도가니 사건’을 다루기 시작했다. 사건의 실상과 국민들의 분노, 법적·제도적 미비점을 국회가 어떻게 쓸어 담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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