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점수
돈오점수
  • 덕일 <풍주선원 주지 스님>
  • 승인 2011.10.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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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불교 수행 중에 참나를 찾기 위한 마음자리 방법이 있습니다. 참나란 무엇일까요?

본래 우리의 진면목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근원에 참나의 자리는 누구나 다 고요하고 광명한 영원한 대자유의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서부터인가 그 고요함과 광명함을 찾지 못하고 혼탁함과 번뇌 망상에 가려져 ‘습’이 되어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며 온갖 욕망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붓다는 이 세상은 불타는 거미집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괴로움이 지나가면 또 다른 번뇌 망상과 고통이 다가오고 흡사 산을 하나 넘고 나면 또다시 커다란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의 마음이 참나를 찾지 못하는 한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부르고 오르고 또 올라도 끝도 보이지 않는 욕망만이 커질 뿐입니다. 그러한 과정의 사이사이에서 오는 좌절감과 허탈함은 내가 왜 이러한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지 괴로운 생각에 잠기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불타는 거미집 같은 세상에서 해탈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참나의 자리를 느끼고 발견하여 영원불멸하고 언젠가 밝은 절대 세계에 머물 수 있도록 돈오점수해야 한다고 지눌 스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수심결을 요약해서 말한다면 ‘돈오점수’ 하나로 말할 수 있습니다.

돈오점수란, 절대계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아 지금까지 지어온 업을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키우자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참나의 마음자리를 보려면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내가 무언가 가지려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욕심으로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갖고 싶다는 마음이 끊임없는 욕망으로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나는 저걸 꼭 가져야 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린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결국 그 욕심에 마음이 묶여서 그것을 소유할 수 없을 때를 슬퍼하며 온갖 망상들이 괴롭히게 됩니다. 힘든 노력을 해서 그것을 손에 쥔다고 해도 그 기쁨은 일시적이고 또다시 다른 것이 다가와 유혹하고 욕망을 불러 옵니다. 그때 무언가 한 생각이 일어 깨닫고 갖고 싶다는 욕망을 놓아버리게 되면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바로 이것이 비움이며 깨달음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마음이 평안해지겠지요. 바로 참마음 자리로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일단 마음을 비우면 모든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마음 비우는 방법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표현할 때 흔히 동체대비라고 합니다. 동체대비라는 것은 나와 남을 구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님을 깨달아서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이 곧 내 아픔으로 와 닿고 그래서 부처님의 자비를 달리 무연자비라고도 합니다. 즉, 인연이 없는 자비라는 뜻입니다. 어떠한 원인도 어떠한 조건조차도 없는 자비라는 뜻입니다. 저 사람이 내 아버지라서, 혹은 내 남편이라서, 혹은 내 자식이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구하고자 하기 때문에 무연자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는 불이의 말씀, 즉 진실로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풍성한 가을을 맞이해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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