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식품
유기농 식품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09.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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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밤새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가 멈추고 싱그러운 아침이다. 목욕을 끝낸 자연은 풋풋하다.

비가 내리지 않아 밭작물이 배배 타들어 갈 때 간절하게 기다리던 비였지만 너무 많이 오니 피해가 또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기농으로 먹을 욕심에 우리 밭에는 약을 전혀 치지 않았더니 작물들의 꼴들이 마치 전쟁 직후의 굶주림에 지친 모습이다.

땅속에서 사는 식구들이 많은지 고구마를 캐 보니 온통 흉터투성이다. 땅강아지와 굼뱅이 두더지들의 짓이 아닌가 싶다. 유기농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약을 치지 않으면 농사는 짓기 어렵기만 하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사람들과 융화되어 살기 어려울 만큼 해를 끼치는 것들이 많아서 점점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는가 보다. 풀 뽑기 싫어서 풀 약을 치고 감자나 고구마 마늘 골파 등을 심을 때도 약을 넣는다. 얼마 전까지는 뿌리 식물에는 약을 하지 않아도 큰 피해가 없었다. 가급적이면 비료대신 EM이나 식초, 목초액을 주면서 유기농으로 먹으려고 가꾸지만 해충들의 등쌀에 호미 들고 밭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져 간다.

문암 생태 공원이 있는 마을에 살고 있다. 그린벨트와 준공업 지역이었으며 비행기 소음이 끊이지 않는 지금은 테크노폴리스 지역으로 묶여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는 낙후 지역이다. 생태공원이 생기고부터 도로가 정비되고 가로등이 서고 시의 관심으로 발전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앞으로 전망이 있어 보이니까 매매가 형성되고 여기저기 야산이 뭉개져 개발되는 풍경도 보인다. 그로 인하여 생태계가 파괴되어 야생동물들이 갈 곳을 잃고 위협을 느끼며 허둥거리다 기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이 날만 새면 들려온다. 날아다니는 새들은 생태공원이나 다른 곳으로 날아서 새 둥지를 틀겠지만 고라니 떼가 갈 곳을 잃었다. 사람들의 인심은 밭작물에 피해를 주는 존재니 죽어야 된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어 보니 별맛이 없다며 마을사람들은 날만 새면 죽어가는 고라니 이야기가 풍성하다. 주민자치센터에 전화를 걸어 볼거리도 신통치 않은 넓은 공원 귀퉁이에 살 곳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에 건의를 해보았지만 별 대책이 없다고 한다.

녹색 청주를 만든다고 길바닥에 녹색 물감을 칠하는 것을 본 바 있다. 살 곳을 잃고 허둥거리는 짐승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는 너그러운 행정은 펼쳐질 수 없는 건지 마음이 아팠다. 내게 피해를 준다고 적으로 치부하고 없애버려야 한다며 사람들의 이기심은 날로 더 커져간다. 서로 시기 질투하며 남을 배려한다든지 칭찬하는 분위기의 사회는 점점 사라져 가는 원인도 이런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요. 살기 좋은 곳은 사람만 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즐기고 가꾸며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면서 살 때 살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아야 살기 좋은 곳인데 농사를 지을 때 피해 주는 것들을 제거하듯 농약을 쳐서 농사를 지어 놓고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 먹기를 원하고 있다.

농약을 하지 않는 우리 집과 텃밭에는 달갑지 않은 긴 짐승(뱀)이 산에서 가끔 피난을 온다. 이런 날은 백반을 손에 들고 긴 짐승을 쫓는다. 이것이 현실인 것을 유기농 식품들은 정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유난히 길었던 장마도 물러가고 길가에 코스모스가 춤을 추고 국화 꽃봉오리가 노오란 꽃잎을 피우고 있다. 김장 배추와 무들이 나란히 줄 서서 키 재기를 하며 가을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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