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시클로 아저씨 3
바람난 시클로 아저씨 3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1.09.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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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베트남 생활기

매일매일을 왕처럼 하고 사니 동네 사람들이 다들 부러워서 한마디씩 합니다. 그 한마디씩을 모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 할배는 시클로 기사가 아니라 한 마리 학 같어~.”

그런데 어느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집 안에 들여놓던 시클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클로를 몰고 ET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닐까? 달그림자 속으로 뚫고 간 것은 아닐까 했는데, 사람은 역시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동물인가 봅니다.

늙으나 젊으나 욕정을 가진 짐승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동네에 소문이 짜하게 났습니다. 호강에 지친 시클로 할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잠적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할머니와 노처녀 딸은 근심으로 가득합니다.

학 같은 모습으로 가출을 했던 할아버지는 한 달쯤 뒤에 비 맞은 개꼬라지를 하고 귀가를 했습니다. 신선의 모습으로 구름처럼 타고 다니던 시클로는 어딘가에 팔아 버리고 피골이 상접해서 구부정히 기어들어왔습니다. 아줌마랑 바람이 났고, 늦바람에 눈이 멀어버린 할아버지가 집 지으려고 모아둔 돈 다 털어넣고 버림받아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여인네들의 질투심이 몹시 세답니다. 젊은 여인네건 나이든 할머니건 여자는 여자입니다. 이제 할머니와 딸네미는 할배에게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다리미판은 고물장사 줘 버리고, 구두는 어디다 버렸는지 감췄는지 목욕탕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게 만들고, 성당에 갈 때는 밖에서 자물쇠를 잠가서 밖에도 못 나오게 만들고, 밥을 해 주는지 어쩌는지 밥 얻어 먹는 꼬라지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 와중에 내가 호강을 합니다.

“미따윤~ 짜오.” (미따윤, 안녕?)

“할머니, 꽁 짜오 마.” (할머니, 안녕하세요?)

“미따윤, 날씨가 춥네!” - 잉? 영상 25도인데 춥다고?

“네 그러네요.”

“할배는 어디 갔어요?”

“몰라, 그 인간 어디서 뭘하고 살고 있는지. 뒈지지도 않고.”

“그런데 미따윤, ‘분 보 후’에 좋아해?”(후에 지방 쌀국수)

“그게 뭔데요?”

“음식으로 유명한 후에 지방 쌀국수야”

“아유~ 엄청 좋지요, 빨랑 해 봐요.”

“그래? 그럼 내가 후딱 장 보고 와서 이따 저녁에 해다 줄게.”

“네. 할머니 깜언.” (감사)

할배가 얻어먹어야 할 맛난 쌀국수를 내게 가져다 줍니다. 맛있게 냠냠 먹습니다. 

다음날 새벽, 바람난 할배가 아줌마를 잊지 못해 외박을 하고 일찍 기어들어옵니다. 열대에 단련된 몸이라 새벽 선선한 바람에도 못 견뎌 차가운지 잔뜩 웅크리고, 양기는 다 뺏겼는지 눈에는 눈곱이 가득하고, 하얀색 목욕탕 슬리퍼 질질 끌고 들어옵니다. 문을 빼꼼 열더니 후다닥 들어갑니다. 그리고 살금살금 침상으로 올라가서 자는 척합니다.

잠시 후 딸네미와 할머니가 나오더니 밖에서 자물쇠 걸어 잠그고 성당에 갑니다. 할배는 또 갇혔습니다. 철장 속 원숭이처럼 창문 밖을 보고 있습니다. 바람난 시클로 기사의 말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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