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 장석주 -
저게 저절로 붉어질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세상은 혼자 가는 법도 없지만 그냥 가는 법도 없습니다. 대추 한 알도 붉게 영글기까지는 태풍과 천둥과 벼락과 번개를 버텨내야 했습니다. 대추가 둥글어지기까지 숱한 밤과 볕과 달을 품어야 했습니다. 봄을 지나 가을로 오는 사이 대추나무는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한 알의 생명을, 우주를 키웠습니다. 68억의 인구 중 1명에 불과한 우리들 역시 누군가가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키운 소우주임을 가을자락에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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