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앞에서
새로운 시작 앞에서
  • 정효준 <새터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1.09.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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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많은 신자분들의 환영을 받으며 신설 본당인 새터 본당에 부임을 했습니다. 번듯한 성당이나 사제관은 없었지만 맑은 날씨가 좋았고, 무엇보다 신자분들의 환한 미소가 내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과 설렘은 현실 앞에 조금 빛을 바랬습니다. 3층짜리 조립식 건물의 3층을 사제관으로 급조를 했고, 임시 성당은 반쪽짜리 공장 건물에 책상으로 제대를 만들고, 신자들은 플라스틱 일인용 의자를 사용했습니다.

막막한 현실 앞에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분명 누군가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루어졌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름 시골 본당에서 사무장 없이 많은 것에 신경 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고개를 들고 있는 교만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지난 성당에서는 새소리가 아침의 단잠을 깨워주었는데 여기는 성당 부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벽돌 공장의 차 소리가 잠을 깨워줍니다. 조립식 건물이라 방음이 안 되는 탓에 차에서 내리는 모래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참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바꿔주는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온 지 보름 정도 지나고 겨울을 나기 위한 임시 성당을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철판으로 되어 있는 건물을 뜯고 패널로 막는 작업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시작된 작업은 오전 미사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철판을 분리해 바닥에 내던질 때 들리는 소음은 분명 아침의 차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큰 소리가 미사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일이었기에 그 소리가 소음이 아닌 그저 당연한 소리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아침의 벽돌 공장의 사람들도 그것이 소음이 아니었겠구나.’ 그러면서 불평만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활기차게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려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음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철판을 다 뜯어내고 패널을 붙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앙상한 골재만 남겨진 건물 위에 사제관이 덩그러니 올려져 있습니다.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집니다. 방에 앉아 있을 때 가볍게 느껴지는 진동이 괜히 신경이 쓰여 현장 감독을 맡고 있는 형제님에게 재차 물어보았습니다. “무너지지는 않겠죠?” 그럴 때마다 확신에 찬 어투로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두려움은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밑에서 잔일을 도울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철거 과정에 함께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재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이 마치 마지막 심판 때에 하느님 앞에 설 우리들의 모습같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처음에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둥들을 내 생각과 고집으로 가려가며 나름 이쁜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합니다. 비바람에 상처입어 벗겨진 구석 구석을 임시방편으로 덧붙여 놓은 철판들이 남과 비교하며 지지 않기 위해 급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닮았습니다. 나사가 오래되어서 억지로 떼어낼 수밖에 없는 철판은 이것만은 빼앗길 수 없다고, 이것 없이는 나도 없다고 고집 부리는 우리의 모습 같습니다. 결국 그분 앞에서 다 놓을 것들입니다. 그날과 그 시간이 되면 처음에 나에게 주신 그분의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놓을 것이기에 포기해 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 안에 그분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대견하다 여기시기도 하고, 안타깝게 여기시기도 하시며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에 함께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분이 사람이 되신 이유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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