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1> 연재에 부쳐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1> 연재에 부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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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크로드야 한없이 푸르구나
둔황 망사산을 오르는 낙타행렬



쿤밍의 대석림 전경



터키 가파도키아의 로즈벨리전경



실크로드는 채워지지 않은 목마름이며 내겐 미지의 향수 같은 존재였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와 발걸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찾는 길이었다.

끝없는 초원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꿈을 간직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 기차로 중국 대륙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경유하여 이스탄불과 아테네, 발칸반도를 거쳐 로마를 연결하는 상상으로 그려보았던 실크로드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한한 잠재력과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광활한 대륙에 대한 그리움이 늘 파도처럼 내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고비사막의 외로운 달처럼 세상을 홀로 걷는 나그네의 발걸음으로 긴 여정이 시작 되었다.

실크로드는 동서 문화를 교류시킨 세계화의 첫 번째 통로였다.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던 시절 육로를 통하는 가장 길고 가장 복잡한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던 길이다.

이 길을 통해 종교를 비롯한 다양한 동서양의 문화와 문물이 교류되었던 자유 무역로이자 문명의 통로였다. 실크로드란 원래 중국 비단의 유럽 수출로 인해 명명된 조어(造語)였으나 그 개념이 확대된 결과 원뜻과는 다른 하나의 상징적인 아칭(雅稱)으로 변하였다.

실크로드의 유래는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1833-1905)이 1869-1872년까지 중국 각지를 답사하고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씨르다리아강과 아무다리아강 사이에 있는 트란스옥시아나 지역과 서북 인도로 수출된 주요 물품이 비단이었던 사실을 감안하여 이 교역로를 “자이덴슈트라쎄(Seidenstraβe, 영어 Silk Road)라고 명명한 것으로부터 기인하였다.

이 글은 네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제 1부는 상하이에서 시작하여 쑤저우, 항저우를 비롯하여 장자지에와 시안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유명관광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남방지역과 내륙지역을 거치는 25일간을 투어리스트 실크로드(Tourist Silk Road)라고 명명하였다.

제 2부는 난저우에서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카슈를 경유하는 20간의 오아시스로(Oasis Silk Road)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우즈베크스탄의 타슈겐트, 싸마르칸트, 부하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초원로(Eurasia Steppe Silk Road)를 설정했다.

제 3부는 비잔틴(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서 그리스 아테네, 마케도니아, 코소보,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를 경유하여 헝가리까지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물려받았던 오스만터키의 영향력이 미쳤던 지역까지를 비잔틴 실크로드(Byzantine Silk Road)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4부는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로 이어지는 로마제국의 영향력을 받았던 이태리반도까지를 로만 실크로드(Roman Silk Road)로 구성하였다.

사막의 열기와 초원의 별빛을 벗 삼아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70여 일의 여정 동안 내 안에 갇혀있던 고정관념들이 대자연의 자유스러움을 만끽하였다.

여행은 내 안에 갇혀있는 또 다른 자신을 자유스럽게 해방시키는 과정이며 찾는 길이다.

이 글이 나오기까지 지난 3년 동안 말없이 도와주고 격려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딸 시경(始炅), 한 줄 한 줄 애정과 조언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준 포항의 장태원 시인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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