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4>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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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청 시대의 체취가 숨 쉬는 예원과 예원상장
작은 연못 한 가운데 붉은 연꽃이 열대나무들의 푸른 감청색 색조와 우러져 이국적 정취를 한껏 발산하고 있는 예원앞 수중 정원과 그 가운데 위치한 호심정이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 함영덕교수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예원으로 향했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예원은 상하이 유일한 명원(明園)이다. 예원은 명나라 때 상하이 출신 고관 변윤단이 부친을 위해 지은 저택으로 1559년에 착공하여 1577년에 완공하기까지 무려 18년이나 걸렸다 한다.

예원인근에는 우리나라 인사동에 해당하는 예원상장이 있는 데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3,4층 높은 목조건물로 밀집되어 이루어진 거리모습은 명 청 시대의 상가모습을 재현해 놓은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전통수예, 공예, 목기류, 명품 점, 전통악기, 부채 등 다양한 전통상품을 취급하는 거리이다.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인파가 붐비는 이 지역은 상하이를 찾는 방문객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다. 이곳에서 시끌벅적한 시장의 분위기와 각양각색의 중국전통상품들을 구경하며 상하이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예원 앞 수중정원에 이르렀다.
작은 연못 한 가운 데 붉은 연꽃이 열대나무들의 푸른 감청색 색조와 어울려 이국적 정취를 한껏 발산하고 있다. 연못 가운데 자리한 호심정(湖心亭)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전통가락이 한낮의 찌든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예원은 베이징의 방대한 규모의 정원에 비해 소규모이나 쑤저우(蘇州)의 4대 정원에 비길만한 아기자기한 공간배치와 설계의 교묘함이 돋보이는 명소이다. 해상명원(海上名園)이란 강택민 주석의 휘호를 지나 삼수당 정문 현관을 들어서면 갖가지 형태의 구멍 뚫린 회색빛 돌들이 정원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하게 배치되어 있다.

용의 조각을 올린 담을 기준으로 정원내부는 몇 개의 블록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밀조밀한 회랑과 누각, 높은 담 벽 사이로 난 작은 통로를 따라 걷노라면 과거 중국인들의 생활방식과 취향이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점춘당에 이르러 잠시 처마 끝에 스며나는 역사의 함성소리를 조용히 호흡해 본다. 태평천국의 난 당시 소도회의 사령부가 설치된 역사의 메아리가 스며든 공간이다. 박제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 모금 깊이 들이 마시어 본다.

태호석으로 호사스럽게 쌓아올린 석가산과 경극이나 악기를 연주하던 상춘당, 200년 된 밴얀 뿌리로 만든 화서당홀의 탁자와 의자, 지붕 처마 끝에 날렵하게 비상하는 용머리와 새, 학 ,잉어등의 조각품들이 주변과 어우러져 이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정원을 지나 주거지역인 내원으로 들어섰다.

4층 누각에 촘촘하게 늘어선 창문틀과 황갈색 무늬의 기와, 금빛으로 단장한 정면 현관, 네모진 정방향의 넓은 마당을 둘러쌓고 있는 1,2층 누각의 회랑이 어우러져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다. 예원은 명, 청 시대 관리나 귀족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방문객의 입장료와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에 들리면 꼭 한번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보고 싶었다.
오후 3시 번화한 예원상가 지역을 나와 주택가와 재래시장이 연이어진 골목길로 들어섰다.

거리 양편 처마나 창가의 전선줄 위에 속옷들이 빼곡하게 걸려있는 골목길과 소시민들의 주거지역을 걷노라면 60-70년대 우리의 옛 모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상하이는 최첨단 자본주의와 19세기의 풍물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지상 88층의 진마오(金茂)빌딩이 솟아있는가 하면 도심 한복판에 달동네와 같은 지역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오후 3시35분 미로에서 벗어난 기분으로 구시가지 2차선 도로 옆 마당로 306호 유적지 관리소에 도착했을 때 10여명의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10여 평 정도의 좁은 영사실에선 매년 수 만 명의 한국방문객들이 참관하여 당시 독립군들에 대한 영상자료를 보는 곳이다. 이곳은 방문객들의 입장료와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다.

1층 회의실에서 2-3층 유품전시실까지 한 나라의 임시정부 건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소박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어 가슴이 에이어 왔다.

3층 한 켠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료관을 설치해 놓았는데 1919년 4월 독립선포식을 비롯하여 독립운동단체 간행물 진열과 임시정부 화폐, 이봉창, 윤봉길의거, 정당단체 활동, 광복군의 성립과 군사 활동 등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유적지로 조성된 곳은 1992년 삼성그룹의 지원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고 한다. 도심에서 택시로 20분 정도의 거리인 마당로 프라타나스 거리를 걸으며 임시정부 청사가 3층짜리 조그만 연립주택 한 켠에 불과한 것을 확인하고 가슴이 메어지는 연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크기와 부유함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신이며 철학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석에 이끌린 듯 발걸음을 띄워 놓으며 60여 년간 방치했던 너무나 초라한 망명정부의 임시청사를 둘러보며 나라 잃고 이국땅을 방황했던 옛 선각자들의 고뇌에 찬 생애와 민족의 아픔을 잠시 되새겨 보았다.

도로 하나를 놓고 가장 비싼 지역과 달동네 같은 구시가지가 함께 병존하는 것이 상하이의 두 얼굴이다. 인구 1,200백 만의 경제수도 상하이의 심장을 밟으며 유명세만큼은 볼거리가 없지만 도시의 활기찬 모습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생각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창지앙(長江) 하구의 작은 어촌 마을이 영국에 의해 개항되면서부터 국제적인 항구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열강에 의해 계속 조차지역으로 승계되었던 상하이는 중국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역사는 짧은 편이나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과학, 무역, 산업, 기술의 중심지로 발달하여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눈부시게 도약하고 있다. 상하이를 실크로드 첫 출발지로 선택한 것은 중국의 역사나 문화적 측면보다는 21세기로 접어든 중국산업의 변화의 물결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을 거대한 상선이 고동소리 울리며 물살을 가르는 모습은 새로운 세기를 향한 중국인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활기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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