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놀이
가면 놀이
  • 김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08.2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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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엄마는

가끔 가면놀이를 해요.

손님이 집에 오면

엄마는 얼른 새색시 가면을 쓰고

내게 속삭이지요.

“아이스크림 줄까?”

“아니면, 초콜릿 줄까?”

손님이 현관문을 나서면

엄마는 새색시 가면을 벗어 던지며

내게 버럭 소리치지요.

“빨리 숙제 안 할래!”

“이놈의 컴퓨터를 없애든가 해야지.”

난 가면놀이가 좋은데

엄마는 재미가 없나 봐요.

-김용삼 시인의 ‘가면놀이’

시를 읽고 난 아이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무언가 할 얘기가 있다는 눈빛들이다. 나도 궁금함에 눈을 반짝이며 아이들을 향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여기 있는 친구들 엄마도 이렇게 가면놀이 하시니?”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들이 들려왔다.

“우리 엄마도 매일 매일 가면놀이해요. 우리 집에 손님만 오면요…….”

“우리 엄마는 여우 같아요. 사람들이 있을 때하고 없을 때하고 어떻게 다르냐면요…….”

“그래요. 우리 엄마도요 가면놀이 매일 해요. 어떻게 하냐면요…….”

아이들 이야기가 멈추지 않는다. 그동안 작은 가슴속에 쌓여 있던 자기 엄마에 대한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내려는지 20여명의 4학년 어린이들은 서로 질세라 앞 다투어 말들을 쏟아놓고 있었다. 아이들의 불만은 엄마들이 공부만 하라고 하지 자기들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어린 친구들의 말들이 어찌나 뾰족뾰족한지 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묻고 있었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많이 나 있니? 너는 왜 그렇게 마음에 상처가 많이 나 있니?’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작아지는 걸 기다리다 얼른 궁색한 변명으로 마무리해야만 했다.

“우리 친구들 엄마께서는 친구들을 무지무지 사랑하고 계신 거야. 그래서 남보다 더 잘 키우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내 말에 아이들은 수긍하는 것처럼 잠잠해졌지만, 난 금세 후회하고 말았다.

‘남보다 더 잘 키우고 싶어서?’ 그래,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명문대 진학이 최고의 가치이자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 속에 사는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런 말을 자주 했을 거다. 그래서 어른들은 가면놀이를 하며 아이들을 다그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가면놀이 뒤에서 아이들은 저렇게 분노하고 있는데 말이다.

누군가 어느 글에서 이렇게 쓴 걸 읽은 적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독을 품고 산다.’ 그때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오늘 나는 화가 난 아이들 모습 속에서 그 글귀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가슴 깊은 곳이 뜨끔거리는 걸 느끼며 얼른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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