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에서 펼쳐드는 향촌삽화
고속버스에서 펼쳐드는 향촌삽화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1.08.1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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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올해는 초봄부터 극성스러운 장마가 한여름이 깊어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제법이나 많은 농경지가 유실되고 적잖은 희생자가 안타깝기도 하다. 모처럼 문학모임에 참석하겠다고 올라서는 고속버스에서도 적잖은 빗줄기가 차창을 두들겼다. 제법이나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이 또한 마땅찮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전부터 열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책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직은 어설픈 문장실력이 부끄러운 나로서는 공부를 하겠다고 잡아드는 것이 책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버릇처럼 잡아든 책 박희팔 소설가님의 향촌삽화는 엽편소설이다. 엽편소설(葉編小說)이란 A4용지 1매의 분량으로 ‘미니픽션(minifiction)’이라고도 한다. 작가의 세계관과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응축시키는 방법으로 콩트와 비슷하지만 극적인 반전을 이루려는 꽁트보다는 문학적 깊이가 깊다.

엽편소설의 작가이신 박희팔 선생님은 향촌삽화는 물론 소설집 바람이 타고 가는 노래, 장편소설 동천이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신 원로이시다. 후덕하신 인품으로 신입회원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다.

향촌삽화의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소설가님이 구수하게 엮어주시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다. 소재가 또한 다양하다. 팔삭둥이가 시오리 길을 걸어가다가 보리밭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알듯 모를 듯하다. 영마루댁이 가을밭을 바라보는 것이 친정을 가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낳은 마당이와 뒷간에서 낳았다는 뒷간이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도 뒷간에서 들려오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제법이나 많았으니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누구든 한생을 살면서 적잖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살든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거기에 무엇을 주어도 미운 사람이 있고 무엇을 받으러 와도 고마운 사람이 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적잖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좋은 일이나 슬픈 일에도 재미있게 풀어주는 향촌삽화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 향촌삽화를 집어들었다.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였다. 

책이란 무슨 내용이든 적잖은 상상력을 키워주기도 한다. 누구라도 상상력이 없으면 살아가는 소망이 없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이유가 없다. 참고서는 물론이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이야기에서도 좋은 공부가 되는 것이 책이다. 하지만 요즘에 책을 보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나 또한 책을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다 열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해서야 버릇처럼 잡아드는 것이 책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많이 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누구라도 상상력을 키워주는 책 속에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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