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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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규영(청주 수동)
  • 승인 2011.08.15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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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145년 만에 고국에 온 당신을 환영합니다.

폭우와 폭염을 무색케 할 정도로 중앙박물관은 인파로 북적댔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외국관광객들로 그 넓은 중앙홀이 정신이 없었다.

복잡한 인파 속에 나와 두 아들도 포함되었다. 해마다 방학 때면 서울에 오는 게 우리만의 피서법이다. 문화적 갈증에 메마른 아이들에게 서울행은 단비와도 같다. 더위와 북적이는 사람들의 열기 속에서도 가장 긴 행렬이 늘어선 곳이 바로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가 진열된 곳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연방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들뜬 표정이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는 일종의 성취감이 한몫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규장각 의궤란 조선왕실의 행사 예식 등을 예법에 맞게 기록해 놓은 책인데 강화도에 행궁에 외규장각을 설치, 보관해 온 책을 말한다. 왕이 직접 보는 어람용과 여러 곳에 분산 설치해 볼 수 있는 분산용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를 얼마나 중시했나를 알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으니, 그 예술적 가치는 말할 필요가 없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그 세밀함과 채색 하나하나에 빠져들어 역사 속 그 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예식에 따른 왕의 마음이 나타나 있는 해설 글귀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존의 위치인 왕도 한 여인의 지아비인 동시에 한 자식의 어버이며, 자식이었다. 의궤에는 사람의 희로애락 인생사가 담겨 있었다. 우리네 인생사와 다르지 않았다. 떠나는 이에 대한 슬픔과 성인으로서 새 삶의 기쁨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의궤를 보며 문화적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가 왜 그리 반환을 주저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예술적 가치나 희소성도 손꼽히지만 그 의궤를 보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의 가치를 무서워한 것이리라. 프랑스나 그 어떤 유럽 왕실도 이런 예는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의궤를 보며 내 나름대로 작은 욕심을 부린다면 가족일기나 가족일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 한 해 한 해 쓰다 보면 멋진 책자 하나가 만들어질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후대에 있어 일반인의 삶은 이러했노라고 유추 가능한 책자가 될는지.

아직은 부족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은 글귀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내게 의궤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쓰라는 당근과 채찍이었다. ‘기록’에 대한 위대한 증거로 지금 내 눈 앞에서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조용한 울림으로 큰 깨우침을 준 당신을 온몸으로 뜨겁게 열렬히 환영합니다.

잘 돌아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너무 오랜 여행에 지쳤을 당신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시고 고국의 흙냄새, 사람냄새를 느껴 보십쇼.

빼앗긴 제 것 찾아와 안심했다는 듯, 박물관에서 바라본 남산이 유난히 푸르고 기세가 의기양양하다. 나 역시 내 것 제자리에 와 있다는 안도감에 두 발 시원스레 뻗고 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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