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나온 암탉, 모성과 자유
마당 나온 암탉, 모성과 자유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08.11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마당을 나온 암탉은 끝내 족제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아니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목숨을 바친 것이 맞다.

작가 황선미의 스테디 셀러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원작 동화를 이야기 원형으로 영화화했다는 것보다 더 큰 의미는 이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쓰며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아파트형 공장을 방불케 하는 사육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면서도 열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조그만 마당을 그리워하던 암탉 '잎싹'은 인간에 의해 죽었다는 판정을 받은 끝에 웅덩이에 버려진다.

그러나 기력을 회복한 암탉 '잎싹'은 청둥오리 '나그네'의 도움으로 족제비 '애꾸눈'의 밥이 될 위기를 벗어나면서 비로소 마당으로 나온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암탉 '잎싹'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육되는 공간인 마당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자연의 품에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그보다는 더 큰 자유를 향해 도전한다.

늘 그렇듯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고난이 뒤따르는 법.

암탉 '잎싹'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난생 처음 엄마 잃은 오리알을 품게 되면서 모성의 본능을 깨달아 간다.

알과 '잎싹'을 보호하던 용감한 청둥오리 '나그네'는 족제비 '애꾸눈'과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암탉을 엄마로 각인한 아들 오리 '초록'과의 종이 다른 교감은 암탉의 모성애를 눈물겹게 한다.

헤엄을 칠 수도, 날 수도 없는 암탉 '잎싹'의 한계는 아들 오리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그 아들 오리 '초록'은 철새가 되어 날아온 청둥오리 무리의 파수꾼으로 당당하게 선발되면서 '나그네'의 용맹함을 혈통으로 이어받는 세습의 역설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 품을 떠나려 하는 오리 아들과 '초록'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암탉 엄마 '잎싹'의 숙명은 가슴 저리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거기 그런 암탉의 자유와 기른 정의 모성애에 머무르지 않고 더 숭고한 자연의 질서를 장엄하게 존중하며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추운 겨울, 늘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족제비 '애꾸눈' 역시 엄마였으며, 먹이를 구하지 못해 새끼 족제비들의 생명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초연하게 희생하는 암탉 '잎싹'은 경이롭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1967년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선보인 지 44년 만에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에 성공했으며, 그 열기는 여전히 계속되면서 150만 관객 돌파도 기대되고 있다.

더구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은 국내외 블록버스터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여름 극장가에서 당당하게 경쟁을 벌이면서 이루어 낸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야기의 힘은 이처럼 위대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백미는 아무래도 인간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데 있다.

그리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유로의 꿈과 엄연한 자연의 질서 앞에 목숨조차 초개와 같이 바칠 수 있는 희생과 종을 넘나드는 모성의 본능도 어쩌면 인간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데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암탉 '잎싹'과 그 밖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철저하게 배경이 되는 자연과 어우러지며 결코 도드라지지 않는 그림 그림들의 숨긴 의도를 살펴보는 것도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는 즐거움의 하나다.

연일 비가 계속된다. 세상의 온갖 작물들은 그 빗속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유독 인간인 내가 그 비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조차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이기심의 발로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 겸연쩍다.

어쩌면 인간은 벌써 그전부터 자연을 무시해 왔던 건 아닌지.

이번 말복만큼은 삼계탕을 먹기가 미안해질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