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 이제 그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 이제 그만
  • 정태일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1.08.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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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최근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와 관련해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을 목격하면서, 과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일본과는 조용한 외교를 강조하다가 일본 국회의원의 울릉도 방문강행과 그에 따른 입국금지조치로 한 방 맞고, 거기에 우리의 영원한 우방인 것 같았던 미국에게서 동해(East Sea) 표기와 관련해,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으로 카운트 펀치를 제대로 맞았다.

이번에 미국이 우리 영해인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을 국제기구에 제출한 것은 국제수로기구(IHO)의 해양경계 실무그룹 의장이 동해표기에 대한 공식 의견을 미국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영해 표기와 관련해 분쟁이 있거나 경합이 있는 해역의 경우에는 병기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례였고, 이에 동해와 일본해 표기를 병행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견해가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국은 한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처음에는 자국의 수로기구가 제출한 일본해 단독 표기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연방기관인 지명위원회(BGN: United States Board on Geographic Names)의 표기 방침에 따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기인 “일본해를 우리 역시 사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종전의 입장을 번복하였다.

과거 우리는 일제식민지로, 한국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의견을 개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때 당시 미국의 안중에는 한국은 없고, 일본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이 그때와 유사해 미국이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도, 적국도 없다. 오직 국제사회에서는 자국의 이익만이 중요할 뿐이다. 설사 미국이 한국과 혈맹관계라고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상황이 오면, 한국과 미국의 우호관계도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바람 앞에 놓인 등불이 된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의한 일본해 단독표기 의견에 대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나?

우리 정부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 양국의 입장을 고려하여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미국이 동해가 아닌 일본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할 때까지 무엇을 한 것인지 묻고 싶다. 만약에 미국의 동해에 대한 입장을 사전에 감지하고도 이를 막지 못했다면, 우리는 일본과의 치열한 외교전에서 완패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뒤늦게 미국에게 투정부리듯이 항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다양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이다. 혹시나 이번 미국의 동해가 아닌 일본해 단독표기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입장이라면 곤란하다.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가 자국의 영토이고, 동해가 아닌 일본해라고 왜곡된 주장을 하면서 국제사회에 이를 공론화시켰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이러한 사태를 예견했어야 했고,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했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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