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고도 대의기관 자임하나
이러고도 대의기관 자임하나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08.08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반(反)대기업 입법과 재벌 총수의 국회 출석 저지 등을 위한 국회로비 강화 방안을 담은 문건을 만들었다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재벌기업들이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의 로비 대상을 분담하고 후원금, 출판기념회 및 지역구 행사 후원, 지역민원 해결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조직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삼성, 현대차, LG, SK, 롯데, GS 등의 대기업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로비 대상도 당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 여야 지도부를 비롯해 정무위·기재위·환노위 등 국회 상임위위원장과 여야 간사, 법안심사소위원장까지 망라돼 있다.

정경유착의 구태를 벗지 못한 재계의 전근대성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앞선 것이 정치판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발상과 기획이 시도됐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전경련은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는 439개 유력 기업과 67개 단체를 망라한 대표적 경제인단체이다. 공공연하게 국가 정책을 포퓰리즘이니, 비현실적이니 하며 꾸짖고 훈수할 정도로 역량과 파워를 갖춘 단체이다. 이런 단체가 구체적 실행전략이 담긴 문건을 만들었다면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회를 개별 로비로 충분히 지배할 수 있는 기관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경련은 이 문건을 실무선에서 작성해 올렸으나 퇴짜를 놓았다고 주장하지만, 시도 자체로 국회에 굴욕을 안긴 셈이다. 하긴 국회 청문회 출석을 약속해 놓고도 돌연 해외로 나가 버티고 있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50일이 넘도록 불러들이지 못하는 국회에 전경련이 경외감을 가질 리 없다.

검찰의 국회 국정조사특위 출석 거부 역시 입법부의 권위 훼손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반증하는 서글픈 사례이다. 국회는 동행명령까지 거부한 검찰 간부 6명을 고발하고 지난 6월 해체된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를 이달 말부터 재가동하기로 했지만, 버렸던 카드를 다시 집어드는 모양새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중앙수사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안을 다시 꺼내들고 검찰을 압박하겠다는 뻔한 속내가 엿보인다. ‘국회와 검찰이 충돌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일개 외청이 동격으로 취급되는 현상에서 ‘과연 국회가 우리의 대의기관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더욱이 검찰은 저축은행 부실수사로 대통령의 질책까지 받았던 터라 국회 요구에 불응할 입장도 아니었다. 국회가 이런 처지의 검찰에조차 우롱을 당한 것은 자초한 면이 크다. 국회 사개특위가 중수부 폐지와 특별수사청 설치라는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고도 무산시킨 것이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청와대가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고 나서자 특위 소속 여당 의원들이 뜻을 굽히기 시작했고 결국 완강하게 저항하던 검찰에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청와대 한마디에 소신을 바꾸는 의원들의 모습에서 검찰이 느꼈을 경멸감을 상상하면 이번 출석 거부의 배경도 짐작이 가능하다.

정작 여야는 저축은행 국정조사 증인 채택을 놓고 한 달 가까이 줄다리기를 벌이는 과정에서 핵심 증인들을 대거 빼버렸다. 삼화저축은행 불법 자금을 한나라당에 전달한 의혹을 받는 이영수 전 한나라당 청년위원장을 비롯해 감사원장 시절 저축은행 감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도 조처를 취하지 않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황식 국무총리,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빠졌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 부부도 슬그머니 명단에서 사라졌다. 국회 스스로는 정략적 판단에 따라 증인 명단에서 차도 떼고 포도 떼 놓고 검찰에는 일선 지청장에게까지 동행명령을 발동했으니, 검사들이 코웃음을 치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선지 국회의 검찰 수뇌부 고발과 사개특위 재가동 합의가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는 국민은 많치 않은 것 같다. 사법권력과 재계의 조롱을 받은 국회가 가까스로 꺼내든 대응책마저도 엄포로 끝낸다면 남은 일은 문패를 떼는 것밖에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