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산
여름산
  • 강희진 <수필가>
  • 승인 2011.08.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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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위해 고향에 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날 저녁 노을을 따라 운전하는 기분은 스스로 생각해도 최고다. 길 양쪽으로 노란 금계국이 장관을 이루고 논둑의 망초 꽃도 예쁘다. 한 송이만 보면 별로인데 무더기로 피어 있으니 아름답다. 함께한다는 것은 저런 것인가 보다. 여름의 초록도 서로 어우러지고 겹쳐져서 갈맷빛이라고 하는 진초록을 띤 게 아니었을까. 그 또한 함께하는 아름다움이다.

보릿대를 태우는 냄새가 나고, 새삼 고향에 왔음을 실감한다. 어릴 적 다니던 산비탈어름이나 언덕쯤을 지날 때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행복하다. 길섶의 다랑이 밭에서 노부부가 감자를 캐고 있다. 알이 잘 들었냐고 물으니 욕심 없는 목소리로 농사지은 만큼은 나왔다고 한다. 이심전심으로 웃는다.

내 유년의 배경은 늘 초록이었다. 녹음에 뒤덮인 여름이 좋았다. 초록이 무성한 산에 올라 산딸기를 따먹고 맹감나무 잎을 컵 삼아 산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먹으며 소나무 그늘에 앉아 공기놀이를 했다. 놀다가 시들해지면 마을로 내려와 감나무 아래서 감꽃 목걸이를 만들고 보릿대를 주워 피리를 불거나 채송화 꽃잎을 말려 스케치북에 붙였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한낮의 폭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느낌도 좋고 훅 끼쳐오는 지열도 희열로 느껴질 만큼 좋다. 땡볕에 주차해 둔 자동차 문을 열고 들어가 있으면 사우나를 하는 것처럼 개운하다. 남들은 찜질을 하는 것 같다고 문을 열자마자 에어컨을 틀어놓는데 나로서는 한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다. 하지만 여름은 뭐니뭐니해도 산이 장관이다. 금강산은 봄을 나타낸 것이지만 그 산을 여름이 되면 봉래산이라고 한 것도 계곡과 봉우리에 짙은 녹음이 깔려 신록의 경치를 볼 수 있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고향의 산 역시 여름이면 골짜기 골짜기 우거진 녹음과 어우러져 흐르는 계곡 때문에 아름답다.

고향 근처에 산이 하나 있다. 쪽쪽 곧은 소나무와 바위, 그리고 활엽수들로 어우러진 쳐다보기만 해야 할 것 같은 멋진 산이다. 그런데 조금 더 차를 몰아 반대쪽으로 가면 너무나 완만하다. 누구든 올라가 뒹굴고 싶은 편안한 민둥산이다. 처음 그 산의 형태를 발견했을 때 신기함에 차를 돌려 다시 확인해 보기도 했다.

고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저 산을 보면 내 생각은 멈춘다. 고향을 올 때마다 그 산을 지나면서 사람도 도도함과 기품, 그리고 편안함과 너그러움을 함께 갖추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했다. 그러면서도 난 욕심 내지 않았다. 난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면 50대에 접어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다니엘 호돈의 ‘큰바위 얼굴’ 전설 속의 큰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도 유명한 장군도 저명한 정치가도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았던 어니스트가 아니었던가?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고향집 앞산에 있는 큰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명상에 잠기고 닮고자 평생 노력한 결과 전설 속의 큰바위 얼굴이 되었다.

나또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와 다른 점은 비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이제라도 고향의 그 산을 품는다면 늦은 것일까? 그렇더라도 열심히 살면서 그 산처럼 후덕하고 어진, 그리고 도도한 이미지까지 형상화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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