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9>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9>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8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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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쿠리
과거 농촌에서 봄, 가을, 겨울 잠시 농한기를 맞으면 행상으로 더러는 ‘대소쿠리’, ‘대바구니’장사들이 지게나 머리에 이고 마을과 집집을 돌면서 팔러다니곤 했었다.

“대소쿠리 사려∼ 대바구니 사려∼”하고 외치는 사투리 섞인 소리가 귓가에 들이는 듯하다.

대소쿠리는 대나무를 잘개 쪼개 그릇 모양으로 엮어만든 생활도구로 크기에 따라 여러종류가 있는데 구멍이 뚫려 있어 가루 같은 것은 담을 수없으나 가벼워 농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가정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대소쿠리는 보리쌀을 삶아 건져두기도 하고 곡식을 담고 채소를 뜯어 나르기도 하는등 쓰임이 많았다.

전라남도 담양의 장날, 냇가 둔치에는 통대나무를 비롯한 대나무로 쪼개 만든 복조리, 대소쿠리, 대바구니, 갈퀴, 광주리, 키 등의 생활도구들이 새벽부터 가득 쌓아놓고 팔고 사는 사람들이 몰려 시끌벅적했다.

대나무는 우리나라 남쪽지방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전남이나 경남지방,그중에서도 담양지방에서 가장 많이 대나무가 생산된다.

담양장터에서 팔리는 대나무 제품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대소쿠리다.

담양서 생산되는 대소쿠리가 전국 생산량의 70%에 달한다니 정말 많은 양이다.

그것들이 전국방방곡곡에 판매되어 생활도구로 쓰였으니 얼마나 많은 양이 생산됐는지 상상해 보라.앞서 열거했듯이 대소쿠리는 국수를 삶아 건지고 보리쌀을 씻어 물을 빼고 기타 부피가 크거나 감자나 고추, 옥수수등 곡식을 담아 나르는데 쓰는 등 쓰임이 많은 필수 도구였다.

일제시대 때 어릴적 배고프던 시절에 어머니께서 보리쌀을 삶아 대소쿠리에 담아 두면 그것을 훔쳐 먹다가 꾸중을 듣던 추억이 떠오른다.

보리쌀은 쌀처럼 솥에 넣고 삶아도 쉽게 퍼지지 않아 애벌로 미리 삶아서 대소쿠리에 건져 놓았다가 쌀을 섞어서 다시 솥에 넣고 끓여야 밥이 제대로 된다.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 중부이북지방에서는 싸리나무를 늦여름에 베다가 껍질을 벗겨 반으로 쪼개 싸리나무 소쿠리를 만들었으나 대나무 소쿠리 보다는 탄력이 적고 쉽게 부패하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석유의 부산물인 값싸고 가벼운 플라스틱 소쿠리가 나오면서 부패할 염려 없고 질긴 장점으로 주부들이 플라스틱 소쿠리를 즐겨 사게되면서 대소쿠리 생산이 줄고 설자리를 잃었지만 대소쿠리를 한보따리씩 가지고 남쪽 사투리로 “대소쿠리 사세요”, “대바구니 사세요”하며 외치고 다니던 장수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코끝이 찡해온다.

불과 30∼40여년 전 대소쿠리를 팔러 다니던 장사치들은 부잣집에선 공밥을 얻어먹고 여자들은 식모방에서 잠자리를 청하고, 남정네는 사랑방에서 잠자며, 농사철에는 일손을 도우며 돈없는 집은 외상으로 팔고 보리때나 가을철 쌀로 대금을 받으며 단골집을 늘려 나갔다.

대나무는 4계절 잎을 달고 있는 늘푸름 목본(木本)으로 아무리 큰 대나무라도 대순이 올라와 한해에 다자라고 4∼5년간 단단해지면 베어서 생활도구를 만들고, 초창기 비닐하우스를 짓는데 가는 대나무가 많이 쓰이기도 했었다.

대나무는 낚싯대로 사용되기도 하고 담뱃대를 만들고 장피리, 퉁소 등 악기까지 만들어 내는 다양하게 쓰이는 보배스런 나무다.

/글·사진 김운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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