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발자취를 찾아서 <24>
기독교 발자취를 찾아서 <2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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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교회

충북기독교 복음에 큰 공을 세운 조사 김정현의 전도로 청안교회 최초의 교인이 된 박만화 여사와 장호식씨가 사가(私家)에서 예배를 보면서 시작 됐다.

박만화 여사가 한우 1필과 쌀14말을 헌납해 현 교회터를 매입하게 되면서 부흥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07년 8월 창립이래 오늘날까지 한국의 선교역사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청안교회 전경. ‘청안’은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견됨에 따라서 인간의 거주 역사가 밝혀진 곳이다. 청주과학대학을 지나 작은 능선을 넘으면 발아래 측백나무 잎처럼 가지런히 펼쳐진 마을이 있다. 이곳에 1907년 8월을 창립일로 보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청안교회(담임목사 임종웅)’가 있다.‘청안’은 구한말 충북 3대 읍성의 하나로 이왕가의 후손들이 낙향하여 자리잡은 곳으로 독립 군·현이 있었으나 행정관서를 괴산, 증평으로 옮기면서 농촌마을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옛 향교를 비롯해 교육의 중심지로 청안초등학교, 청안중학교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청안읍교회는 충북기독교 복음에 큰 공을 세운 조사 김정현의 전도로 이 교회 최초의 교인이 된 박만화 여사와 장호식씨가 사가(私家)에서 예배를 보면서 시작됐다. 당시 장호식씨는 독립운동가로 추정되며, 박만화 여사는 서울에서 판관을 역임한 호판관의 부인으로 대한제국 말년에 온 가족이 청안으로 이주한 청안의 부자로 그 또한 귀부인 이였다.혼잡한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는 청안교회는 박만화 여사가 한 ▲ 청안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한 최초교인 박만화여사 기념비.
우 1필과 쌀14말을 헌납해 현 교회터를 매입하게 되면서 부흥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청안교회는 박만화 여사의 헌신적인 물질 봉사에 감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교회 입구에 박만화 여사의 기념비를 세우고 ‘始終如一’이라고 적었다.

교회 초창기는 김승구 조사가 파송되어 예배를 인도했고, 민노아 선교사가 맡기도 했다.

1914년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읍내리 민가를 살들여 예배처소를 마련하고 백남익 조사의 인도로 예배를 보다가 1919년 6칸의 새예배당을 건축했다.

교역자로는 선천 부인전도회가 파송한 백중생 전도인이 예배를 인도 했다.

이후 주위에 동점교회, 장암교회를 개척 했으며, 운곡교회는 정동범 전도사가 청안교회의 파송을 받아 개척하고 충청노회의 설립인가를 받아 증평시찰 지방회가 주관해 설립 예배를 드렸다.

한국전쟁 때는 이 교회를 시무 중이던 전용섭 목사가 공산군에게 피살되어 순교하자 1951년 경환 목사가 부임했다.

경환 목사가 시무하던 중 교단분단의 열풍이 일어 1954년 경환 목사가 일부 교인을 이끌고 한국기독교장로회로 이탈하자 대한예수교장로회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교인들은 천막을 치고 예배를 보는 등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1961년 연구희 목사가 부임하면서 같은해 12월 기독교장로회로 이탈했던 교인 40여명이 돌아와 다시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대 장로들의 업적예배하는 지성소, 말씀훈련의 도장, 영육의 안식처, 열방을 향한 선교의 센터로 쓰임 받고 있는 청안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이 교회출신 장로들의 역할이 컸다.

이교회 초대 김용태 장로는 3대에 걸쳐 장로를 역임했다.

민노아 선교사가 청안읍교회를 설립할 때 당회를 조직하고 당회록을 기록 했다.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 김 장로는 그 일가가 번성하여 한 때 50여명 가족이 교회에 출석하며 헌신 봉사했으며, 교역자에게도 순종하는 모범을 보여 후에 그의 변치않는 신앙생활이 귀감이 되었다.

2대장로를 역임한 이기문 장로는 청안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물질축복을 많이 받아 헌금을 많이 했다.

그의 장로 20주년 기념예배 때는 교회앞에 철제종탑을 봉헌하는 등 교회내 경건한 예배의식을 정착시켰다.

지금도 교회 앞에는 철제 종탑이 우뚝 서 있다.

특히 정의일, 정천일 장로 형제는 뜻을 같이해 전 재산을 희사해 사학인 재단법인 칠보학원 청안중학교를 설립했다.

정의일 장로는 손기정, 서윤복과 함께 우리나라 마라톤 전국대표선수로 활약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대회 출전의 기회를 놓쳤다.

영국 세계노장마라톤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 정 장로는 신익희 대한체육회장상을 수상했으며, 충북육상경기연맹 부회장, 전국 노장마라톤협회 고문을 맡기도 했다.

후에 정 장로는 사학 설립의 공로로 문교부장관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26세에 장로가 된 정천일 장로는 일제 때 농촌계몽을 위해 청년봉사대를 조직해 영농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노력을 인정해 정부에서는 충북을 시범지역으로 한 푸른마을 운동을 전개하며 충북 최초 인삼재배 기술을 청안에 보급한 사람이다.

그외 역대 장로로 김영조, 양흥수, 이용호, 김영희, 최재술 장로가 있고, 현 장병기, 정동혁, 김충국, 전병철, 김의종 장로가 시무하고 있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1907년 8월 창립이래 오늘날까지 한국의 선교역사에 중추적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청안교회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 영혼을 주님께로’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사회와 더불어 복음의 전지기지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창립 100년을 앞두고 있는 청안교회 정동혁 장로는 “또 다른 100년의 시작, 교회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새 시대 새로운 꿈과 희망으로 새로운 2세기를 향해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담임 목사 및 부목사 목회 비전에 중점을 두고 전 교인이 2006년을 ‘전도하는 해’로 정하고 새로운 교회발전에 새 바람이 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장로는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해결된다”면서 “맑은 공기, 깨끗한 물로 영혼의 안식처, 은혜와 축복의 동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준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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