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조정, 지방만 독박?
대학 구조조정, 지방만 독박?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08.0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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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해 온 정부의 서슬이 더 시퍼래진 것은 ‘반값등록금’ 논쟁이 절정에 달하면서부터였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재원 조달이 핵심 과제로 등장하며 나랏돈 잡아먹는 혐의로 부실대학들이 도마에 올랐고, 두 시책이 연계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급탄력을 얻었다. 언론이 나서 대학 문제와 비리들을 잇따라 두드리면서 급기야 부실대학들이 등록금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원흉으로 몰리는 형세가 돼 버렸다. 이에 고무된 교육과학기술부는 부실대학 퇴출에 올인하기로 하고, 전체 대학의 하위 15%를 살생부에 올리고 단계적으로 퇴출 수순을 밟겠다고 공언함으로써 대학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반값등록금은 물 건너가고, 부실대학 정리만 남아 칼바람을 일으키는 형국이 된 셈이다.

고교 졸업생이 줄어드는 마당에서 난립한 대학들을 정비하겠다는 방침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현재의 평가지표를 들이댈 경우 지방대만 잡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에 선정된 23개 대학만 보더라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대학은 단 한 곳뿐이고, 나머지는 지방소재 대학이다. 올해는 대출제한 대학을 50개로 늘리고, 내년부터 이 대학들의 학생들에 대한 금융권 대출은 물론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도 제한해 고사(枯死)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상황을 감안할 때 올해 리스트에도 지방소재 대학들이 대거 오를 것이 뻔하다.

교과부 평가에서 지방대학들이 고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과부의 주요 평가지표는 취업률, 재학생충원율, 교육비환원율, 전임교원확보율 등이다. 어느 지표 하나 지방대가 유리할 것이 없다. 학생 수요의 급격한 감소와 지역 인재들의 서울 집중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지방대가 신입생과 재학생 충원율을 올리기는 역부족이다. 취업시장의 지방대 졸업생 차별 관행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평가되는 취업률 역시 지방대로서는 난감한 잣대일 수밖에 없다. 재학생들의 수도권대학 편입을 가속화하는 사회·문화적 인프라의 결핍, 정부의 차별적인 재정 지원 등도 평가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지방대의 숙명을 가름한다.

지난해 대출제한 대학에 선정됐던 영동대학교를 보자. 이 대학이 부실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은 저조한 재학생충원율 때문이다. 인구가 5만에 불과한 농촌도시에 위치해 지역에서 신입생 조달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이 대학이 살아가려면 수도권 대학에서 밀려난 신입생들을 잡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대학 신입생의 70%가 수도권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대학이 악조건 속에서도 크게 선전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문제는 수도권 출신 학생들 대부분이 ‘편입’이라는 제도를 통해 수도권으로의 복귀를 부단하게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탈출 욕구에 극장 하나 없는 척박한 학교 밖 환경까지 보태지면 장학금 확대 등의 대책들은 허망할 뿐이다. 영동대가 올해 재학생을 지난해보다 303명이나 늘려 3000명대를 돌파한 것은 살생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재학생충원율은 여전히 교과부 기준에 미달이니, 대학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거듭 지적컨대 수도권과 지방에 동일한 부실대학 평가지표를 들이대는 것은 또 하나의 지방 죽이기가 될 공산이 높다. 지방대학들이 주로 걸려들 현행 평가제가 강행될 경우 수도권 과밀을 심화하고 지방민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우선 하위 15%, 50여 대학을 단기간에 정리하겠다는 대학살 시나리오부터 완급 조절이 이뤄져야 한다. 그 다음에 수도권과 지방을 각기 다른 그룹으로 분류해 평가하는 방식이 마련돼야 한다. 한때 부실 평가를 받았던 대학에 대해선 저조했던 평가지표 개선율 등 자구노력을 평가해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대학이 소재한 자치단체들도 연대해야 한다. 우리동네 대학은 빼달라고 억지를 부리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잣대를 요구하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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