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와 연변지역을 돌아보고
백두산 천지와 연변지역을 돌아보고
  •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1.07.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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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사람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저는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고, 맛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경험 자체로도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느낌을 전달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설명을 하다 보면 그때 느꼈던 흥분이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또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신기하고 부러운 듯 보는 시선들 때문에 내 경험이 더 빛나고 고귀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달 둘째 주간에 떠난 일정도 그런 흥분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4박 5일의 일정은 떠나기 전부터 설레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백두산 천지였습니다. 물론 백두산 천지가 최종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13명의 신부님들과 떠난 순례의 여정이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신부님이신 최양업 신부님의 조선 입국을 위한 첫 번째 시도가 있었던 훈춘 지역의 순례였습니다.

월요일 이른 새벽 13명의 신부님들이 모여 인천공항으로 향했고, 비행기로 2시간 정도를 날아 연길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공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한 3시간을 달려갔습니다. 아침 일찍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최대한 가까이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동하는 길에 노래 가사에서나 접했던 해란강, 일송정을 차창 밖으로 보며 지났습니다. 그런데 조선족 가이드가 조금은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원래 8월 중·하순에 오면 천지를 볼 확률이 높은데 지금 이 시기에는 천지를 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지를 100여 킬로미터 남겨놓은 곳에 천지를 볼 수 있는 전망대 비슷한 곳이 있는데 그곳도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신부가 13명인데 하늘이 열려 주겠지'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새벽녘 천둥 번개와 비가 한 차례 지나갔습니다. 아침 일찍 창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우리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고지대까지 차를 타고 가는 바람에 처음에는 버스로, 다음은 소형 버스로, 다음은 승합차로 갈아타며 조금씩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천지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그 화면에 내가 그대로 뛰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신비로운 느낌마저 드는 주변 공기의 흐름이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천지의 1/3 부분밖에는 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언젠가 천지를 한 바퀴 거닐며 명산의 기운을 받아낼 시간이 올 것을 희망해 보았습니다. 하산하는 차 안에서 돌아가 신자들에게 전달할 이곳의 느낌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문득 안데르센 동화의 공주와 완두콩이 떠올랐습니다. 공주를 잠 못 이루게 했던 완두콩 하나 같은 것이 내 생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완두콩은 무얼까?'

로마에서 공부하던 시절, 근처 오래된 성당들과 유적지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된 돌과 기둥들을 감상하며 뿌듯해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건물을 눈으로 확인하며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줄 생각에 기쁨에 차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마음들이 백두산 천지와 연변 지역을 돌고 와서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느낄 수 없었다기보다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유럽의 오래된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들은 그저 새로움이었습니다. 그 건물이 200년, 300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것을 보는 순간이 시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연변 지역을 거닐면서 그리고 백두산을 올라 천지를 볼 때의 느낌은 단순한 새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끊어졌던 필름을 다시 연결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특히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오고갔던 도문의 두만강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내가 홀로 서 있지 않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한 신앙인으로서 가정의 연장선일 뿐만 아니라 긴 역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그 역사가 물려준 피와 정서를 간직한 소중한 존재임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자신의 자리가 소중하고 의미 있음을 함께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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