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 대학은 있되 지역은 없다
천안에 대학은 있되 지역은 없다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07.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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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천안에 고려 태조 왕건의 묘(墓)는 없습니다. 사당(廟)을 발표자가 혼동한 것 같습니다.” 지난달 24일 천안박물관서 열린 충남역사문화연구원·한국중세사학회 주최의 ‘고려시대 천안의 역사적 위치’ 세미나에서 엉뚱한 말들이 오갔다. 토론자로 나선 교수가 성거산에 왕건 묘(무덤)가 있는 걸로 이해해 “개성 왕건 묘가 천안에서 이장된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한 학자가 바로잡는 촌극이 벌어졌다. 발표자는 천안 모 대학의 한국사 교수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세미나 이후 열린 만찬회장. 발표자 및 토론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 문화관광과 및 천안박물관 등 지역기관 직원은 없었다. 천안 관련 논문을 낸 바 있는 윤용혁(공주대)·김갑동(대전대)·박종기 교수(국민대)가 “이번 모임이 천안의 도시 탄생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현지에서 논의한 첫 학술대회”라며 입을 모아 그 의의를 말했다. 향토사학자 임명순씨 이외 지역 참석자가 없어 필자가 어쭙잖게 “고려사 전공자들이 이렇게 천안역사에 관심을 가져 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박 교수가 “천안의 대학 교수들은 천안에 대한 논문을 별로 쓰지 않은 모양이지요.”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천안역사와 관련한 현지 대학교수들의 글을 본 적이 드물다. 서울·부산·대전·공주 등에서 참석한 교수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학자의 도리라며 이상하다는 반응이다.

천안시는 최근 『천안시지(市誌)』를 대신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관하는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천안의 역사·문화·경제를 담기로 했다. 종이 책에서 디지털 온라인으로 바뀐 것이다. 그 실무 수탁기관으로 도 산하기관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공주 소재)이 선정됐다. 이 연구원이 올 내 기초조사와 집필 항목을 선정한다. 어찌 보면 예정된 일이었다. 천안에는 맡을 만한 기관이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10여 년간 천안 역사는 외지에서 맡아 왔다. 발굴은 공주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에 집중됐고, 일부는 고려대(조치원), 충남대(대전), 서울대가 참여했다. 천안박물관 지역사 강좌도 대부분 외지 학자들이 도맡았다.

향토문화자료를 집대성해 인터넷 등 온라인으로 서비스하는 디지털문화대전은 충남에선 공주·논산·서산시가 먼저 진행했다. 공주·논산은 2008년, 2009년 각각 구축이 끝났고 서산이 진행 중이다. 공주와 서산은 공주대가, 논산시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맡았다. 이번에 천안을 역사문화연구원이 맡았으니 충남 시·군을 두 기관이 번갈아 맡는 셈이다. 기왕의 공주와 논산시 집필자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중복된다. 충남 역사 연구를 특정기관들이 집중 수행했기 때문이다. 천안 경우도 같은 일이 벌어질 전망이다.

천안의 역사·문화 서술을 외지 학자들에게 맡겨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대학이 그렇게 많지만(9곳) 천안을 본격 연구한 교수들이 적으니 당연한 일이다. 천안시의 3개 역사관련 위원회에도 천안 역사학자는 없다. “대학들이 돈 되는 시 연구용역에만 관심 있지 지역 연구는 소홀하다”는 누군가 던진 뼈 있는 한마디가 생각난다.

이런 탓인지 천안시는 역사 관련 소동도 잦았다. 2001년 향토사학자들이 집필한 『천안백년사』는 일본 침략을 ‘대륙진출’로 표현하는 등 식민사관적 서술로 물의를 빚었고 2005년 천안교육청의 중학교 지역사회교재는 유관순 열사가 징역 7년형(3년형의 잘못)을 받았다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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