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꽃, 바나나 꽃
처음 보는 꽃, 바나나 꽃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1.07.0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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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낯설지만 매력 가득한 곳, 베트남(59)

이국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못 접해 본 것을 접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래 익숙했던 것을 잊고서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은 경이롭고 신비한 경험입니다.

매일이 그렇다면 삶은 얼마나 재미있고 신이 날까요. 우리네 삶이 나날이 지루해지는 것은 늘 보던 그것이 그것이라는 권태 때문일 것입니다. 안일하게 살지 않기.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여행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바나나 꽃을 봤습니다. 처음 보는 꽃이었습니다. 시장에 갔더니 붉은 옥수수 자루 같은 것을 팔고 있습니다. 식용 식물이겠거니 했습니다. 얇게 저며 쌀국수 먹을 때 넣어 먹습니다. 알싸한 향내가 쌀국수의 은은한 맛을 더해줍니다. 맛있습니다. 먹으면서도 그게 무슨 식물이겠거니 했지 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날 바닷가에 갔습니다. 무성한 바나나 나무 틈새에 그 붉은 옥수수 자루 같은 것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그것이 바나나 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기에도 탐스럽고 연한 자주색 빛깔의 자태가 고운 그 꽃을 저며 먹는 풍습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꽃을 먹는다는 것은 예쁘면서도 슬픈 일입니다. 꽃처럼 예쁜 꽃을 먹으면 내 마음도 예뻐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예쁜 꽃처럼 이슬처럼 살았으면 싶은 마음이겠지요.

다른 한편 꽃을 먹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그것을 먹을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우리네가 진달래꽃을 먹어 허기를 끄려고 했던 시절의 빈곤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네 70~80년대 정도의 수입을 가진 이 동네 사람들의 의식주는 가난합니다.

쌀국수 파는 아줌마의 하루 일당은 2~3천원 정도이고 하루 종일 일하는 청소부 아줌마의 월급은 6만원 정도입니다. 그들의 삶은 고되고 입에 들어가는 밥은 거칩니다. 길죽한 안남미에 간장을 얹어 먹거나 볶은 푸성귀 약간을 얹어 먹습니다 - 물론 가난한 자의 식사입니다.

부유한 자의 식사는 호사스럽지만 부유한 자의 식탁에서 보이는 거만함 때문에 자꾸 가난한 자의 삶에 눈길이 갑니다. 타고난 빈민 의식 때문이겠지요.

우리도 그랬습니다. 거친 밀가루 음식과 깔그러운 보리밥으로 허기를 떼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배불리 먹지 못하던 시절. 산으로 들로 나가 쑥을 뜯어 쑥버무리를 하고, 진달래 꽃을 따 먹었습니다. 이제는 시절이 변해 화전(花煎)이라는 예쁘고 고상한 음식으로 변했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겠지요.

세월이 지나 베트남 사람들도 잘사는 때가 오겠지요. 그때 그들은 바나나 꽃으로 무엇을 해 먹을까요. 쌀국수에 넣어 먹는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을지, 아니면 '꽃 고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별식으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바나나 꽃을 봅니다. 아주 오래전 우리네가 보았던 진달래와 다르지 않습니다. 곱고 아련한 슬픔을 봅니다. 꽃을 먹는다는 슬프고도 예쁜 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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