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
  • 문승호 <시조시인>
  • 승인 2011.07.0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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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문승호 <시조시인>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의 저녁 무렵, 무더위 때문에 집 떠나긴 정말 싫었으나 기다리는 사람을 위하여 부득이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를 타려고 일신여고 정류장으로 나갔다. 이미 그곳엔 시내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좀 붐볐다. 특히 그곳은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행선지의 버스는 아니 오고 엉뚱한 방향의 버스만 도착한다. 내 갈 곳 실어다 줄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일어서서 저 멀리 다가오는 버스를 군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본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목을 늘어뜨리며 그것이 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 목 놓아 기다리는 사람, 침묵하며 기다리는 사람, 속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며 기다리는 사람 등등 기다리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행선지가 다른 버스들만 오갈 뿐이다. 기다리다 지쳐 먼 산만 바라보다 상념에 빠져 본다.

우리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인데 어느 날인가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떠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네 가슴은 일생을 두고 기다림에 설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 목소리가 좋은 사람, 얼굴이 예쁘고 잘생긴 사람, 마음이 너무나 예쁜 사람, 애교가 많은 사람, 곰 같은 사람, 다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다른 느낌의 사람들이 주는 행복도 모두 다르다. 만나면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 만나면 애처로워 보이는 사람, 만나면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의 사람, 그리고 만나면 마냥 행복한 사람, 시간이 가는 게 너무나 안타깝게 만드는 사람,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주는 공통점은 기다림이 있다는 것이다.

언제 누굴 어떻게 만나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그 기다림이 절대 싫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음에 그 기다림이 행복인 것이다.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일년이 될지, 아니면 영영 만나지 못할지라도 기다림이 있기에 하루하루가 행복인 것이다.

기다림은 강물에 하늘을 담그듯 깊고 깊은 그림자를 심장에 드리우는 것이다. 기다리는 일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족한 마음을 가슴에 넣어 보는 일이다. 기다림은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더 큰 마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감싸는 것이다. 또한 기다림은 기다릴수록 커지는 바람이 뼈아픈 혼란으로 와도 그냥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지워야 할 것들조차 간절함이 실려온 듯한 착각이 든다.

기다린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미치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기다림은 아직까지 느리도록 오지 않는 것에 대한 곱고 아름다운 애정이다.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도 기다려 주는 것이 최소한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일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밤새 다 비워내도 다시 또 채우는 일이다.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산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보다는 불행에 빠지기 쉽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이룰 때 느끼는 성취감, 기쁨, 이런 감정들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돈이 많다고 해서 느낄 수 있는 값싼 감정이 아니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물론 쾌락 같은 것은 돈으로 얼마든지 살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행복은 정말 돈으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힘든 시련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 속에 있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있는 동안은 그 누구보다 행복인 것이다. 평생을 기다리는 행복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할지라도 나에게 기다림이 있어 행복한 하루다.

사랑이 있기에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이 있기에 행복인 것을, 오늘도 나는 행복을 얻기 위해 기다림을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리움을 해소해 줄 햇살은 보이지 않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원망하며 오늘도 해 저문 저녁나절 기다림에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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