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뒤
나뭇잎 뒤
  •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 승인 2011.07.06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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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세상

권혁웅

 

 

 

 

 

 

 

 

초여름 햇살의 공습을 막아내기 위해
나무가 잎을 내는 거라고 너는 말한다
나무의 陣地戰(진지전)은 초록 그늘로 본체를 싸 바르는 것,
도무지 가당치 않다는 내 말에
너는 아무 관계 없다는 뜻의 그 얼토와 당토가
바로 폐위된 왕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 나라의 빛은 잎새 뒤의 그늘이
자꾸 스며들어서
수면에 올라오기 전의 물빛이며,
그 속에서 왕은 여전히 수심에 잠겨 있다고
햇살이 두들기는 건 그 나라의 표면이거나
이면일 뿐이라고 너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뭇잎이 그토록 많은 水路(수로)를
품은 것이라고 그토록 많은 눈이
젖어 있는 것이라고



*같으나 서로 다른 모습을 두고 우리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말합니다. 햇살을 받아내는 잎새를 보며 시인은 표면과 이면을 들춰냅니다. 얄팍한 종잇장 같은 초록잎새에서 빛을 막아내기 위해 전진기지로 배치한 표면과 폐위된 왕의 눈물 같은 그늘진 이면을 말합니다. 빛과 그늘이 공존하는, 푸릇한 잎새 위로 햇살이 타고 올라 반짝일 때마다 문득, 초록 요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나뭇잎 뒤를 갸웃댑니다./연지민기자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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