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개혁 이래서 되겠나
국방개혁 이래서 되겠나
  • 이재경 부국장<천안>
  • 승인 2011.07.0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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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역시 그랬다. 강화도 해병 2사단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 김모 상병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군대에서 구타, 왕따, 기수 열외는 없어야 한다."

군 수사관의 범행 동기를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구타와 기수 열외. 결국, 이게 동기가 돼 4명의 젊은이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대한민국 최고 강군을 자부하는 해병대가 이번에 또다시 시련을 맞고 있다. 여론은 이번 사고가 마지막이 아닌 또다시 재발, 다발(多發)할 수 있는 사고라며 그릇된 해병대의 군(軍) 문화를 한목소리로 성토하고 있다.

가까운 사례부터 볼까.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경북 포항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사병들의 가혹행위 피해사례를 공개했다. 피해자의 부모가 낸 진정에 따라 밝혀진 사실은 끔찍하고 황당했다. 한 병사는 후임병들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침상에 매달리게 한 채 온몸을 폭행했다. 또 다른 병사는 후임병에게 손가락에 가위 등 도구를 끼워 돌려 손가락뼈가 탈골되게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의 고문과 다를 바 없었다.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악기바리'라는 고문도 자행했다. 먹지 않으면 역시 무차별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으나 대부분 은폐됐다. 맞아서 갈비뼈가 부러져도 선임병들은 의무실에다 "운동을 하다 다쳤다고 말하라."라고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사실을 말하면 해병대 최고의 모욕인 기수열외라는 중벌이 주어진다. 말 그대로 기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부대 내 위계질서에서 제외돼 왕따가 된다. 후임병이 심지어 기수 열외에 처해진 선임병을 구타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해병대 1사단 소속 사병 1명이 국군수도병원에서 숨졌다. 그는 2009년 가을 자살을 기도해 병원으로 옮겨진 뒤 1년 2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자살 기도 직전 8장의 긴 유서를 남겼다. "'맞기도 하면서 배우고 그게 당연한 이치라는 건데.', '맞는 건 나인데 왜 내가 소외되어야 하는 거지?', '맞는 거 알고 해병대 온 마당에 누굴 탓하지 않아. 그걸 이겨내지 못한 내가 미울 뿐.'" 유서 내용 대부분이 구타, 왕따와 관련된 거였다.

알려진 것만 이 정도일 뿐이지 사실 해병대 내의 폭력은 이보다 훨씬 더하다. 고참의 총검에 눈을 찔려 한쪽 눈을 거의 실명상태로 제대한 사람도 있고, 졸병 때 선임병의 침을 입으로 받아먹어야 했던 사례 등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해병대다.

지난해 국방부가 군내 사망사고 현황을 공개한 적이 있다. 2009년 사망자 수가 113명이었는데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했다. 무려 전체의 72%인 8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반인의 사망원인 1위가 암이고 자살이 4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하면 군인들의 스트레스 강도가 어떤지 짐작할 만하다. 자살의 원인도 상상대로였다. 병영문화의 폭력성, 비민주적 조직문화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이번 강화도 총기 사고의 가해자인 김 상병도 역시 수류탄으로 자살을 기도했었다.

이런데도 군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상급자의 폭행을 견디는 것이 군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해병대의 그릇된 전통, 그 전통을 당연시하는 선임 장병들. 정예화된 선진 강군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국방 개혁 73개 과제에 왜 구타 근절이 빠져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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