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 있는 이곳은
내가 서 있는 이곳은
  •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 승인 2011.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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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광혜원성당 주임신부>

후배 신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신자 한 분을 태운 적이 있었습니다. 후배 신부와 살고 있는 사제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후배 신부 사제관 옥상에 매가 둥지를 틀었단 이야기, 자고 일어나면 지네 한 마리씩 거실에 죽어 있는 이야기, 큰 말벌 집을 제거한 이야기 등 갖가지 곤충과 벌레들 이야기였습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뒷자석의 신자분이 물었습니다. "신부님 어디 사세요?", "산에 살아요."

제가 머물고 있는 광혜원 성당은 산 중턱에 아름답게 세워진 성당입니다. 주변의 식물들과 잘 어우러져 있어서 등산하러 왔다가 성당이 이쁘다며 들르는 사람들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성당에 살고 있는 저에게는 한 가지 고충이 있습니다. 바로 갖가지 곤충들과 벌레들입니다. 부임해서 며칠 안 지나 방 안에 앉아 있다가 바쁘게 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돈벌레를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말벌들이 처마 밑에 집을 제법 크게 짓고는 방 안을 휘젓고 다니곤 했습니다.

3년이 지나는 지금 웬만한 벌레는 죽이지도 않고 살살 밖으로 몰아냅니다. 사실 그들이 내 삶의 공간에 들어왔다기보다는 내가 그들의 활동 공간에 들어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적응을 해 갈 무렵 마지막까지 적응이 안 된 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모기입니다. 그놈은 신기하게도 특별히 피곤한 날을 골라 접근합니다. 잠자리에 누워 막 잠이 들려 할 때 이불 밖으로 내놓은 발이 따끔거리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습니다. 몰려오는 피로감 때문에 '실컷 먹어라'는 자포자기의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놈이 겁도 없이 귓가를 맴돌 때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을 켜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다 막았습니다. '내 이놈을 반드시 잡는다.' 한 손에 파리채를 들고 이곳 저곳을 살폈습니다. 예상대로 모기는 갑자기 환해진 방에서 길을 잃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어제 빨아 놓은 베개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배가 빨갛게 불러 있었습니다. 문제는 저놈을 눌러 잡으면 내가 머리를 두고 자야 할 곳에 빨간 흔적이 남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휘휘 저으며 자리를 옮기도록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배가 무거워서인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자리 잡듯 살며시 잡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참 한심스러운 놈이구나.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할 만큼 피를 빨다니.'

잠이 막 들 무렵 문득 낮에 의견 충돌로 언성을 높였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의 잔상이 아직 머릿속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도 그 모기처럼 죄로 배가 불러 있구나.' 그러면서 내가 그 모기를 쉽게 잡지 못한 이유가 내 베개 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했습니다.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저지른 죄로 배부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좋은 자리에 서 있는 것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 가치관은 자신의 삶에 초점입니다. 그 초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대단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초점이 맞추어지면 그 외의 것들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카메라 기능 중에 접사처럼 말입니다. 그 초점을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맞춰보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서 있는 가족이라는 자리, 이웃의 자리, 신앙의 자리에 초점을 한번 맞춰봅시다. 내가 서 있는 자리로 초점이 옮겨지면 내 자신이 흐려질 것입니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다가올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가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용서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나는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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