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편지 받고서
육필편지 받고서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1.06.2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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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문학에 무지한 내가 습작공부를 시작한 지도 어느 사이에 10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그동안 적잖은 노력을 하였지만 아직도 어설프게 느껴지는 문장실력이 조금도 나아지려는 기척조차 없다. 하지만 어설프게 느껴지는 문장에도 출간하는 작품이 제법이나 많아졌다. 비록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적잖은 가르침에 용기를 주시는 지인들에게 보내드리기도 했다. 나로서는 작은 마음의 보답으로 전해드리는 작품에서도 고맙다는 격려가 또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인터넷에 연재한 장편소설 갈증을 출간하게 되었다. 여전히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그동안 적잖은 가르침에 용기를 주시는 분들이 제법이나 많았다. 그동안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드리는 작품에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격려주시는 배려가 이전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는 격려의 선물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또한 제법이나 많았다. 더군다나 안수길 소설가의 육필편지를 받고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고마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안 소설가는 청주문인협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충북소설가 협회를 창립하신 원로시다. 충북문학은 물론 우리나라 문학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적잖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어설프게 느껴지는 문장실력으로 부끄러운 작품을 출간하는 습작생이나 다름없다. 문하생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스승이나 다름없는 가르침에 용기를 주시더니 육필편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그것도 200자 원고지에 격려주시는 육필편지는 생각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육필편지를 받고서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한동안이나 고맙다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는 누구나 흔하게 주고받았던 것이 편지였다. 하지만 요즘에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누구라도 손쉽게 사용하는 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일상생활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0자 원고지에 직접 쓰는 육필편지를 받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육필편지를 읽고서야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오히려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가 자랑스럽다고 격려하시는 배려가 또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육필편지를 가보처럼 보관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쉽지가 않은 육필편지를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행운이나 다름없는 육필편지를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육필편지를 보내주신 안 소설가의 허락도 없이 편지내용을 공개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한동안이나 망설이다가 편지내용을 공개해도 괜찮으냐고 여쭈었더니 껄껄껄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언젠가 출간하는 나의 산문집에 발표해도 괜찮으냐고 여쭈었더니 고맙다고 격려주시는 겸손에 또한 후덕하신 인품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해졌다.

문학이란 언어이며 단순한 기록이나 복사가 아니고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내가 출간한 작품이 또한 그동안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주위에서 보았던 이야기들이다. 비록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동안 적잖은 가르침에 용기를 주시는 분들이 적잖아서 가능했던 작품들이다. 안 소설가의 육필편지에 또한 겸손의 미덕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안 소설가는 물론이고 그동안 스승이나 다름없이 살펴주시던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어설프게 느껴지는 문장의 작품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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