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너희도….
  •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06.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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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예수님이 들려주신 유명한 이야기들 가운데 포도원 품꾼의 삯에 대한 얘기가 있다.

포도원의 주인이 인력시장에 나가서 일당을 약속하고 일을 시켰다.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로마의 화폐단위로 1데나리온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손이 모자랐다. 세 시간쯤 뒤인 아침 9시에 다시 나가서 일꾼을 더 데려왔다. 그런데 또 일손이 부족해서 12시와 오후 3시에도 더 데려왔다. 심지어는 일을 마감하기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5시에도 또 데려와서 일을 시켰다. 이미 품꾼으로 선택받을 시점을 적게는 세 시간, 많게는 거의 하루 종일을 서성거리고 있는 그들을 부를 때마다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그리고 임금을 줄 때가 되자 주인은 오후 5시에 온 사람부터 일찍 온 사람 순으로 줄을 서게 하더니 가장 늦게 들어와서 일한 사람에게 하루치의 임금인 1데나리온을 주는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던, 온전한 일당을 받기에는 모두들 몇 시간씩의 자격이 모자라는 일꾼들에게 1데나리온씩을 주었다. 이때 이른 아침에 와서 일했던 품꾼이 주인을 향해 엄중 항의를 했다. '왜 저런 사람을 나하고 똑같은 대우를 해 주는냐'는 주장이었다. 이때 주인이 그에게 말한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이 이야기를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이와 같다"고 하면서 들려준 말씀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천국은 '너희도'가 용납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대우를 받을 시간을 놓쳐버린 '너희' 기회를 상실한 '너희'는 뭔가 농장주에게 부름받기 힘든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장애가 있어서 정당한 임금을 계약하기에는 하자가 있었을 '너희'다.

경쟁사회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된 삼류인생들에게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는 자격을 부여하고, 품삯도 하루치를 지급해 주는 글자 그대로의 '천국'이 아닌가? 내 사는 삶이 천국이냐 아니냐는 것은 이 은혜를 느끼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될 것이다.

6월도 어느덧 하순이다. 올해도 벌써 반이 가고 있다. 이 한 해를 하루로 본다면 지금은 열두 시. 그 한나절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우리네 수명을 성경 시편 기자의 말대로 '우리의 연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를 기준 해서 그것을 하루로 축소한다면 지금 나는 몇 시의 시점에 살고 있는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일이 많다면 이미 자격은 상실한 것이다. 삶의 질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참회록에서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라며 고민하지 아니했던가?

내 일생이라는 하루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솔직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아마도 전능자께서 보실 때 천국에서 살 자격을 제대로 갖춘 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음을. 분명, 우리가 이렇게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살아야 할 날이 길든 짧든 분명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비록 이제까지의 삶이 어떠했든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자격을 부여받은 '너희도'에 속한 한 존재로서 그날 그날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내 사는 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길일 것이다.

최근 한 청년이 헌혈을 마친 직후 쓰러져 뇌진탕이 오고 급기야는 뇌사 판정을 받았는데,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장기를 기증할 수 있는 대로 기증했다는 안타깝고도 눈물어린 소식을 들었다. 우리네 삶이 모두 이와 같은 극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그 청년과 부모는 듣는 모두에게 작은 천국을 보여준 분들이 아닐까?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 벽면에 쓰인 문장을 떠올려 본다. "살아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라는. 다시금 내 결함 많은 인생을 '너희도'의 범주에 넣어 주시며 오늘도 그곳에 들어가 땀을 흘릴 수 있는 자격을 준 '그분'의 은혜를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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