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생존
  • 이영창 <수필가>
  • 승인 2011.06.06 2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이영창 <수필가>

옛날 농촌의 겨울은 할 일이 마땅치 않아 허송세월 살았다. 낮에 몸을 편히 보내고 밤에 잠이 쉽게 올 리 없다. 애써 잠을 청해 보지만, 머릿속에는 삼라만상이 다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다 쥐란 놈까지 바스락거리니 눈도 아프고 신경의 날이 서고 있었다. 아무리 너그러운 사람이라 해도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다.

끝내 어머니께서 "얘야, 안되겠다."하시며 일어나 불을 밝히셨다. "내가 밖에 나가 문구멍에 자루를 댈 테니 쥐란 놈을 몰아쳐라." 잠시 후 준비되었다는 어머니의 신호를 받고 빗자루 꽁지 담을 잡고 놈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모두 쑤셔댔다. 요리조리 피하여 도망하던 놈은 인간을 비웃듯이, 들어왔던 문구멍을 향하여 순식간에 "나잡아 봐라"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미 운명의 그물 속에 있지 않은가. 세상사에 몰린 자의 앞이 막힌 것이다. 그렇게 쉽사리 헤어날 수 있었던가, 어쩔 수 없는 일방통행일 뿐이다. 어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자루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는 신세였다. 나는 요동치는 자루를 순식간에 어머니로부터 가로채 마루에 동댕이쳐 버렸다.

다시 어느 날부터 그 냉혹한 생존의 현장을 모르는, 쥐란 놈들은 또 고구마 통가리가 있는 방을 출입하고 있었다. 며칠 잠을 설치고 우리 집에서는 또 한바탕 쥐잡기 작전이 이루어졌다. 얼마 후 한 놈이 자루 속으로 영락없이 걸려들었다.

쥐란 놈은 여러모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만 하였지 한 군데도 예쁜 데가 없다. 순간적으로 내가 자루를 동댕이치려고 하자 어머니께서 "안 돼"라고 큰소리로 말리시는 것이다. "목숨이 붙은 것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죽이는 게 아니다." 나는 생각이 달랐지만 어머니께서 하시자는 대로 횟독(땅속에 인분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큰 독)에 빠뜨려 스스로 죽도록 하기로 하였다. 내 손으로 직접 악한 짓을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이 모를까.

자루 속의 쥐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위기에 처한 놈은 자루 속에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해지기 일쑤지만 순간 나는 강력히 버티는 놈에게 역심리가 작용하여, 마음이 격해진 나는 자루를 횟독을 향해 확확 흔들었다. 그러나 '어찌 그럴 수가' 흥분한 자의 허점을 이용하듯 놈은 헛 군데로 빠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힘들여 잡은 놈을 놓치고 나니 그 뒤에 오는 공허함은 나의 호흡을 가쁘게 했다.

"그것 보세요."하며 나의 실수보다는 어머니의 탓으로 돌리려는 속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말없이 "어서 불이나 꺼."라고 말씀하시고는 잠자리에 드셨다.

불 꺼진 방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방 안에 불이 다시 밝혀지고 어머니께서는 다시 나를 흔드시며 "쥐 정신이 또 들었어." 어머니께서는 미리부터 쥐란 놈이 또 들어올 것을 짐작하고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쥐는 다시 포획되었다.

쥐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결국은 죽어야만 했다. 나도 가정의 안락을 위하여 그와 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이 넓어 할 일이 많다 해도 나도 어제의 길을 오늘도 갔으며 내일도 가야 한다. 놈도 죽는 오늘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에게서 죽어간 놈, 성실히 일생을 마친 것이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