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천망극(昊天罔極)
호천망극(昊天罔極)
  • 이규정 <소설가>
  • 승인 2011.05.3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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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규정 <소설가>

사람이 한생을 살아가면서 스쳐가는 인연이 많기도 하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인연에 또한 적잖은 시간을 함께하는 인연이 작지는 않다. 하지만 어떠한 만남에도 영원히 함께하는 인연은 없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 인연이라도 이별이 찾아오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사람이 한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누구도 거스르지 못하는 세월에 영원히 만남에 영원히 존재하는 인연이라는 것은 없다

내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연에 또한 영원한 것은 없다. 어느 사이에 반백이 훌쩍 넘어가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스쳐가는 인연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연에 사람이라는 도리를 다하고 살았는지? 지금에서 돌아보면 후회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거기에 나라는 존재를 잉태하고 걸러주신 부모님에게 적잖은 불효가 무엇보다 안타깝다. 하지만 이제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지난달 초순에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형님에게서 연락을 받고서야 쫓아가는 병원에서 반기는 어머니가 괜스레 쫓아왔다고 늘어놓는 타박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반기시는 모습을 숨기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눈망울이 시큼하게 젖어들었다. 병원에 누워서도 적잖은 주름살이 접혀드는 자식들의 모습이 어지간히 안타까웠던 모양이었다. 괜스런 걱정을 늘어놓는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의 불효가 적잖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전에도 가끔이나마 입원하는 병원에서 무탈하게 돌아오셨다. 이번에도 며칠이 지나서는 무탈하게 돌아오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서도 퇴원을 못하시는 어머니가 급격하게 쇠약해지셨다. 이제는 미음으로 연명하시는 어머니가 무엇보다 안타깝지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노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나는 어머니의 노환이 아무리 안타까워도 미음이나 먹여드리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이삼일에 겨우 한 번이다. 어느 사이에 어머님을 뵙겠다고 올라서는 충북선 열차가 익숙해졌다. 병원에 쫓아가면 아무런 말도 못하는 어머니가 반기시는 눈망울에 적잖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적잖은 회한이 스쳐가는 눈망울을 마주보지 못하고 쫓아가는 화장실에 주저앉는 버릇이 또한 익숙해졌다. 어쩌지도 못하는 노환을 원망하며 돌아오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사흘이 지나서야 올라서는 충북선 열차에서 어머니가 반기시는 눈망울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머쓱하게 바라보는 차창에서는 그동안의 불효가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이제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만 자책하는 한숨이 멈추지 않는다. 오늘은 어떠신지? 제천이 가까워지면서 궁금해지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열차에 내려서는 괜스레 주춤거리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미음으로 연명하시면서도 못난 자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를 뵙기가 송구스러웠기 때문이다.

호천망극(昊天罔極)이란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가장 성대하게 표현하는 사자성어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은혜를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어떠한 표현도 무색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은덕에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나도 모르게 주춤거리는 병원 앞에서 그동안의 불효를 후회하는 한숨이 멈추지 않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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