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보내며
오월을 보내며
  •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05.30 2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어느 날 나무들이 올리브나무에게 말했다. "우리들의 왕이 되어 주세요." 그러자 올리브나무는 대답했다. "내 몸에서 생기는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거늘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당신들 앞에 우쭐대며 왕 노릇 하겠소"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가서 같은 부탁을 했다. 그러자 무화과나무도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단맛과 아름다운 열매를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우쭐거리며 왕 노릇 하겠소" 그래서 다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가서 똑같은 청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역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하는 수 없이 이제는 열매도 없고 기름도 없고 그렇다고 향취나 술도 나오지 않는 가시나무에게 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너희들이 진정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거든 어서 와서 내 그늘에 피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불태워버릴 것이다."

구약성경 사사기에 나오는 우화다. 기드온이라는 한 지도자가 죽자 그의 70명의 아들 중에 왕이 되고 싶은 야망에 자신의 형제들을 모조리 학살한 아비멜렉을 고발하기 위해 겨우 목숨을 건지고 피신한 요담이라는 동생이 자신의 포학무도한 형을 가시나무에 빗댄 우화이다.

그 당시 아비멜렉은 쿠데타를 성공시키기 위해, 유언비어를 유포해 자신의 출신인 세겜 지역의 여론을 조성, 파당을 만들고, 불법한 자금으로 폭도들을 매수해 그의 형제 70인을 유인하여 한자리에서 학살하는 참극을 자행했다. 그 죽음의 자리에서 홀로 피한 요담은 높은 망대에 올라가서 나무들의 엉터리없는 왕 만들기의 이야기를 함으로 자신의 타는 속을 외쳤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소위 일인시위를 한 것이다.

아비멜렉의 학살과 부당한 집권을 용이하게 해 주었던 그와 같은 지역인 세겜 사람들에게 요담은 계속 말한다. "여러분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것이 잘못된 일이었다면 그에게서 불이 나와서 여러분을 태울 것이요, 여러분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태울 것입니다" 즉 서로가 망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 말이 적중하는 시간은 너무 빨리 왔다. 불과 3년. 말도 안 되는 악행을 방조하고 추종했던 세겜 지역민과 아비멜렉과의 공조가 깨지고 심각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 결과는 공멸이었다. 아비멜렉의 공격으로 세겜 지역민의 남녀 약 1000여명이 불에 타서 숨지고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에 두개골이 깨지는 중상을 입고 신음 속에서 자신의 부하에게 "죽여달라"고 명령하고 그의 칼에 찔려 숨진다. 여자의 손에 죽었다는 말이 죽는 순간에도 싫었던 것이다. 남자에게 있어서 명예란 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일까 어쨌든 실로 무서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결말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논평한다.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70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하니라."(사사기9장 56-57절)

김여진이라는 한 여배우가 5.18 즈음 자신의 트위터에 "당신은, 1980년 5월18일 그날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신은 학살자입니다. 전두환씨"라는 글을 남겼다. 그 글을 본 여당의 한 관계자가 분노의 반응을 보냈고 그러다가 그 여당의 관계자가 사과의 글을 올리는 해프닝()이 있었다. 올해 오월 김여진의 글을 읽으며, 나는 왜 하필 그 하고많은 성경의 글귀 중에 좀 전의 그 우화가 생각났을까 마치 김여진의 트위터 글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요담의 일인시위를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늘로서 오월의 끝이다. 그러나 내년이면 또 온다. 그렇듯이 역사는 반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제발 이런 역사는 반복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월은 가도 좋으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