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8>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38>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1 2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마솥
보은군 국립공원 속리산에 있는 천년고찰 법주사를 찾아가면 절안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첫번째 보이는 커다란 무쇠 가마솥이 있다.

그솥은 법주사의 스님들과 행사때 찾아오는 신도들의 식사를 위해 밥을 짓는 큰 솥이다.

가마솥하면 떠오르는 것이 농촌마을 사랑방의 방문으로 들어서는 입구옆에 의레 가마솥이 걸려 있어 아침저녁으로 쇠죽을 쑤느라 장작불을 때면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는 쇠여물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또 그뿐인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터에는 이곳저곳에 국밥집이 있었고 깔끔함을 짐작할 수 있으며,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국밥 한그릇을 먹고나면 엄동설한 추위도 눈녹듯 풀리던 추억도 있었다.

큰가마솥은 쇠죽을 끓이는 것 뿐만 아니라 메주콩을 쑤거나 일꾼을 많이 얻어 모를 심거나 벼베기를 할때 20∼50여명 분의 밥을 짓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부엌에 두세개씩 있는 반질반질 닦여진 검은 무쇠솥을 보면 정갈한 안주인의 손매움이 나타나고 장작불을 지펴 뜸들인 햅쌀밥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그 구수하고 쫄깃쫄깃한 맛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압력밥솥에다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제시간에 맞추어 밥이 돼 나오는 전기밥솥이 있어 편리하지만 불과 30여년전만 해도 양은솥으로 불리던 알루미늄솥이 무쇠솥을 밀어 부엌의 주장자리를 차지한 때가 있었다.

알루미늄솥은 무게도 가볍고 간편하며 연료도 적게들어 농촌 아낙네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빨리 끓고 쉽개 밥을 짓는 알루미늄솥은 식구수가 적은 집은 두개정도 걸지만 식구가 많은 집은 큰것부터 차례대로 3개정도 부뚜막에 걸어서 큰솥에는 밥을 하고 작은 솥에서는 국을 끓이는 장점이 있었다.

가마솥하면 큰 무쇠솥이 연상되고 무쇠솥은 보통의 솥을 연상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마솥이 시작된 것은 정확하지 않으나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흙으로 빚은 토기로부터 쇠가 발견되면서 무쇠솥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무쇠솥은 과거에는 풀무에서 쇳물을 끓인뒤 거푸집으로 만든 틀에 부어 만들었는데, 지금은 솥공장에 전기로 가동되는 용광로(고로)가 있고, 쇠로 만든 형틀이 있어 훨씬 정교하고 쉽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큰 가마솥이 발전하게 된 것은 일소를 키우는데 여름에는 풀을 뜯어 먹이지만 풀이 나지 않는 계절에는 짚이나 옥수수대를 작두에 잘게 썰어서 쌀겨나 콩깍지를 넣고 끓여서 먹이면서 발전을 거듭한 것 같다.

국어사전을 보면 솥은 ‘각종 음식을 끓이는 쇠 또는 양은, 알루미늄 따위로 만든 그릇’이라고 명기돼 있다.

솥을 거는 것은 부뚜막에 얹어 놓고 흙으로 솥가를 바른다고 했는데 솥에는 솥젖(솥발)이 몸바깥 중턱에 붙어 있는데 세개 또는 네개의 조그만 쇠조각이 솥을 부뚜막에 걸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했다.

솥은 덮는 뚜껑이 있는데 ‘솥뚜껑’이라 하고 함경도에서는 ‘솥베개’, 제주도는 ‘솥뚜게’, ‘소탱이’ 등으로 부른다.

솥뚜껑은 화덕에 거꾸로 얹어 기름칠을 한뒤 잔칫집에서 빈대떡을 부치거나 두부 굽고 나물 볶는데도 쓰여왔다.

이마저도 ‘푸라이팬’에 밀려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글·사진 김운기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