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다리가 사라진 보리밭
종다리가 사라진 보리밭
  •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 승인 2011.05.2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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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찔레꽃 필 무렵이면 으레 떠오르는 정경이 있다.

파랗게 물결치는 보리밭과 그 위를 오르내리며 정겹게 지저귀던 종다리(종달새).

이 세상 그 어떤 수채화보다도, 이 세상 그 어떤 음률보다도 가슴깊이 각인된 고향의 모습과 소리. 그 속엔 언제나 보리밭과 종다리가 자리하고 있다.

보리밭과 종다리. 초가집 하면 먼저 제비가 생각나듯 보리밭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종다리다. 그만큼 둘 간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하늘에서 굽어보면 보리밭이 좋아 보여/ 종달새가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비비배배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 밭에서 쳐다보면 저 하늘이 좋아 보여/ 다시 또 쏜살같이 솟구칩니다/ 비비배배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하다 하루 해가 집니다.

'종달새의 하루'란 동요 노랫말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손에 잡힐 듯 귀에 들릴 듯 어릴 적 고향의 정겨운 모습이 노랫말 속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요즘 아이들이야 보리밭의 진한 풀내음도 종다리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도 알 리 없겠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어느 농촌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었던 정서적 랜드마크가 보리밭이요 그 보리밭을 배경으로 총총히 날며 지저귀던 종다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둘 간의 사이가 점점 멀어져 이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 퍼즐조각처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보리밭은 보리밭대로 면적 감소와 함께 기능과 역할이 많이도 변했으며 종다리 또한 그 이름이 생소할 정도로 아주 희귀한 새가 돼 버렸다.

보리 자체가 배고픔의 상징이자 서민들의 삶을 지탱해 준 대표 작물에서 건강식 혹은 별미로 먹는 특별한 곡물로 인식되거나 아예 사료 작물, 녹비(綠肥) 작물로 취급되면서 보리밭의 존재도 있는 듯 없는 듯 잊혀 가는 농촌 풍경으로 밀려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청보리밭 축제와 같은 문화관광 상품의 하나로서 혹은 도심 속의 눈요깃거리로서 일부 지자체들이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종다리는 또 어떤가.

우리나라를 찾아오거나 텃새로 살고 있는 4종의 종다리과 새 가운데 중부 이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뿔종다리는 그 개체수가 얼마나 줄어들었으면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급으로 지정할 만큼 귀한 몸이 된 상태며, 그 밖의 종들도 전문가들이 일부러 찾아나서야 존재가 확인될 만큼 드문 새가 됐다.

오죽하면 노고지리와 종달새가 종다리의 다른 이름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제비를 몰라 흥부전을 설명하는 데 애 먹는 교사들이 있는 것처럼 종달새 또는 종다리를 묻는 질문에 쩔쩔매는 교사들이 수두룩하겠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리밭이 있다 한들 종다리가 솟구쳐 오를 리 없고 삐르르 삐르르 독특하게 지저귀던 노랫소리 들릴 리 만무다.

어느 지자체, 어느 고장에서 청보리밭 축제를 연다고 하나 TV를 통해 전해지는 모습은 예전의 보리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화단으로 꾸며 놓은 도로변의 보리밭 역시 너무나 작위적인 모습이다. 앨범 속 흑백사진을 꺼내 억지로 색상 입혀 액자로 만든 격이라고나 할까,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소달구지가 있으면 거기에 걸맞은 누렁이와 농부가 있어야 제격이듯 푸른 보리밭이 있으면 종다리 한두 마리쯤은 튀어올라야 좋으련만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아쉬운 정경이 됐다.

구름 속의 참새란 뜻으로 운작(雲雀) 또는 하늘을 향해 고하거나 우짖는다 하여 고천자(告天子), 규천자(叫天子)로 불렸던 종다리. 그들이 사라진 보리밭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자연임을 더욱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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