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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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3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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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아! 난아! 같이놀자
김밥 세줄, 그리고 도시락 한 개. 이게 뭐냐면 8일 동안 어떤 사람들에게 지급된 먹을거리 명목이다.

바로 서울 하이닉스 본사 대표이사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지급된 먹을거리 명세표다.

이마저도 지난 토요일 이후에는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못했다.

바깥, 강남땅 하이닉스 본사 건물밑에는 이들에게 전달 됐어야 했을 도시락이 길거리에 쌓여있다.

길거리에 깔린 도시락 주변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글귀가 적혀 있다.

“하청노동자는 먹지도 못한답니까!” 하이닉스란 기업은 이렇게 비정하다.

하이닉스 기업 구성원들이 이루어낸 업적은 정말로 대단하다.

부채덩어리 회사를 어느새 순이익 2조원 넘게 나는 회사로 탈바꿈시킨 그 업적은 노동운동을 하는 나로서도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고용경계선 안쪽에선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쥐어짜고, 경계선 바깥에선 밥까지 끊어버리는 정말로 무서우리 만치의 야만스러움에 그따위 업적이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이윤을 향해서만 돌진하는 자본을 두고 인간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까. 김밥 세줄과 도시락 한 개로 8일을 지낸 한 노동자가 쪽지를 적어 밑에 있는 하청노동자에게 글을 건넸다.

‘연분홍 꽃 가냘픈 난은 네 공간을 지켜주며 노동자를 유혹한다.

같이 가자 같이 놀자. 대표이사에게 버림받아 그 신세가 비슷하여 처지가 똑같구나. 난아! 난아! 우리 우리 같이 놀자. 같이 가자 이 길을.’누굴까! 누가 썼을까! 지독한 배고픔과 분노를 뒤로 하고 이렇게 예쁘게 서글픔을 노래하는 하청조합원은 누굴까. 나는 정말로 이 사람이 궁금한데 세상은 감감 무소식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송전탑에 올라가도, 8일 동안 김밥 세줄로 연명해도 세상은 감감 무소식이다.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한나라당 박대표 얼굴에 나와 있는 실밥 숫자는 대서특필 나와도, 하청노동자가 굶주리는 끼니수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 하청노동자들이 하이닉스 대표이사에만 버림 받았을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수의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았고, 이원종 지사로부터 버림 받았고, 언론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리고 급기야는 세간의 눈에서조차 버림받았다.

하이닉스도 비정하고, 세상도 참 비정하다.

그래선가. 하청노동자의 노랫소리가 살떨리도록 슬프게 가슴을 찌른다.

“난아! 난아! 우리 같이 놀자. 같이 가자 이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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