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마음이 부처님 마음
자비의 마음이 부처님 마음
  • 덕일 <풍주선원 주지>
  • 승인 2011.05.2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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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덕일 <풍주선원 주지>

은사(범추)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과, 미움을 모두 버리고 애착 없는 마음으로 걸림 없이 살라. 사랑에서 근심이 오고, 애착에서 두려움이 온다. 사랑과 애착이 없으면 근심과 두려움이 없으리라.'

아직까지도 소승이 부족한 탓에 부처의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스님 정열과 無에서 有를 창조한 큰스님의 정신과 부처님 사상이야말로 저희들에게는 깊고 깊은 삼매경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과 같은 선문답이 있습니다.

"한 스님이 행자 때 스님과 문답 중에, 알고 저지른 도둑질이 나쁘냐? 아니면 모르고 하는 것이 나쁘냐?"는 질문에 그 스님은 알고 한 것이 나쁘다고 답을 했으나 그게 아니더군요. 그로해서 이 이치를 깨우치는데 무려 3일 동안 밤낮으로 스님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알고 한 도둑질은 언젠가는 참회할 씨앗이라도 있지만 모르고 한 도둑질은 그 잘못을 모르기에 영원히 참회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처의 가르침 중에 탐진치라는 것이 있죠. 탐은 욕심을 내는 것이고, 진은 화내는 것이며, 치는 어리석은 것인데요. 이런 것들이 사람의 큰 허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도둑처럼 사람의 탐욕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사람들 사이에 큰 문제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양심이 무디어져 자기가 죄를 지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삶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윤리와 도덕이 있고 사회질서와 법도가 있으며 선한 양심이 있는데 지나친 탐욕으로 가려지고 무뎌져서 나만 보이고 네가 안 보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삶이 가장 두려운 것일 것입니다.

모든 행복의 요인을 본래 넉넉히 다 지니고 있지만 이것을 드러내 쓰지 못하는 것은 원망과 번민과 탐욕의 때가 본심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며 원만구족한 은혜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원망 속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모순과 불의를 보고 방관하고 무기력한 것은 불자의 삶이 아니지만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닐 것입니다. 원망하는 것은 종의 삶이고 노예의 마음입니다. 탐욕 속에 살되 탐욕 없는 참도리를 바로 안다면 바로 위없는 행복이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연기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세상의 만물이 인연에 의해서 존재해 나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인데요. 잡아함경을 비롯 여러 경전에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대목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연기적인 구조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예를 들어 볏짚단을 서로 마주해서 세워놓은 것과 같은 것이죠. 마주 세워 놓은 볏짚단의 이쪽을 치우면 저쪽도 쓰러지고, 저쪽을 치우면 이쪽이 쓰러지죠. 서로 마주하고 있을 때만이 볏짚단은 서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서로를 의존해서 함께 존재해 나가는 곳이 이 세상이라는 것이 불교의 관점입니다. 이런 이치는 자연계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살이에서도 그대로 통용되는데요. 아버지가 되는 것은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고, 자식이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될 수 있는 것은 남편이 있기 때문이고, 사업체의 고용주가 되는 것은 고용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를 진전시켜 보면 개개인이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든 이들의 은덕이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스승이 있기에 배울 수 있고, 청소부가 있기에 깨끗하게 지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사회에 나쁜 영향만 미치는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나에게 음으로든 양으로든 그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영향을 내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는 내게 스승이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이 세상 모든 이들은 나와 본질적으로는 한 몸인 것입니다. 신심명에 나오는 진여법계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는 구절이 이런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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