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보따리
인생 보따리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1.05.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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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행복칸타타
강대헌 <에세이스트>

'고귀오(高貴吾)'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닭 꼬치를 팔고 있는 어느 길 가게 주인장이 벽면에 써 붙여놓은 글귀였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 보았더니, '꼬끼오'라는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의 기발한 발상에 감탄하고 말았죠.

음차(音借)의 효과도 좋았지만, '고귀한 나(나는 고상하고 값진 사람이다)'라는 뜻으로 자긍심까지 드러내는 맛스러움에 탄복을 하고 만 것입니다.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의 부제로서, 살다 보면 여기저기서 고수(高手)들을 만나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란 말이 떠오르더군요.

나중에 고귀오라는 말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꾸었던 꿈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 되긴 했지만, 즐겁게 장사를 하고 있는 그 주인장의 '재미 경영(fun management)'에 마음이 쏠렸던 건 사실입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마음을 딱딱하게 먹지 않고 반응하는 분들을 대하면서,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분(고 한영제 목사)이 남기고 간 인생론을 반추하게 됩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인생론을 남겼습니다.

1. 인생을 안정되게 살아라!

2.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라!

3.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라!

불안정하면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고, 무미건조하면 일탈하기 십상이고, 또한 무의미하면 우울의 늪에 빠져 헤매는 게 인생의 속성임을 적확(的確)하게 꿰뚫어 본 혜안(慧眼)이었다고 여겨집니다.

히브리어로 '연구', '배움'이란 뜻을 지닌 유대교의 책 '탈무드(Talmud)'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키소와 코소와 카소입니다.

'돈을 넣는 주머니'를 뜻하는 '키소'는 돈을 얼마만큼 소중하고 유용하게 쓰는지를, '술잔'을 뜻하는 '코소'는 어디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가를, 그리고 '노여움'을 뜻하는 '피카소'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사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 보따리에는 키소와 코소와 카소가 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안정(stability)과 재미(interest)와 의미(meaning)라는 세 개의 옥구슬이 들어 있지 않은 인생 보따리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다르지 않을 거 같군요.

김연대의 '인생'이란 시를 읽어 보세요.

"밤차를 타고 오는 당신을 기다리다/새벽차를 타고 떠나는 나//밤차를 타고 뜬눈으로 와 보면/새벽차를 타고 떠나버린 당신//다시 밤차를 타고 올 당신을 기다리다/다시 새벽차를 타고 떠나는 나."

뭔가 인생 보따리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신지요?

괜스레 속이 쓰린 아이러니(irony)만이 느껴지는 게 인생 보따리일까요?

서로 만나야죠!

아무렴요!

그러려면 우리들의 인생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나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없는 것이 있다면 열심히 채워보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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