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는 노근리 진상규명
다시 불붙는 노근리 진상규명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3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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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존 무초 주한 미국대사가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낸 서한을 계기로 ‘노근리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AP 통신은 30일 한국전쟁이 시작된지 약 1개월 만에 발생한 ‘노근리 사건’이 ‘의도적이고 명령에 의한 학살’이었다는 점을 증명해 주는 무초 전 대사의 서한을 공개했다.

무초 전 대사의 서한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에게 미군방위선 쪽으로 이동하지 말라는 전단을 공중 살포하고 피란민들이 미군방위선 쪽으로 접근할 경우 경고사격을 할 것이며, 그래도 이를 무시하고 미군방위선 쪽으로 접근하면 발포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노근리사건’이 미군에 의한 ‘고의적인 민간인 살상행위가 아닌 전쟁 상황이 낳은 불행한 비극’이라는 한·미양국 합동조사단이 내린 결론에 전면 배치되는 내용이라 논란의 소지가 매우 크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노근리사건’이 ‘명령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는 미국 정부가 살상 행위는 일부 인정했지만 ‘고의성이나 명령가능성’ 부분을 부인, 양민학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 국방부는 AP보도 내용에 대해 아직 입장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향후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AP 보도 이후 ‘노근리사건’ 유족단체는 ‘노근리사건’과 관련된 주요 자료들을 은폐해 온 미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며 29일 유엔을 상대로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노근리사건’ 유족단체는 이어 ‘노근리사건’에 연루된 사람에 대한 처벌과 공식사과를 요청했다.

이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하라고 미 정부에 요구함과 동시에 미 의회에 ‘노근리사건’ 특별법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노근리사건’ 유족단체는 또 사건 은폐 및 조작 혐의로 미 국방부 조사단을 유엔인권위원회에 고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근리 사건’ 의미 및 전개과정‘노근리사건’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1개월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7월 29일까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미 제1기갑사단이 영동-황간 도로선상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비무장 및 무저항 피란민들에게 공중폭격을 감행하고 지상군이 사격을 가한 민간인 대학살사건이다.

‘노근리사건’ 유가족을 포함, 한국의 시민단테들은 그동안 ’노근리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1960년 12월 27일 미군 소청사무소에 피란민집단 학살에 대한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것이 이에 대한 최초 대응이다.

그러나 대책위의 요구는 증거 불충분과 시효만료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대책위는 또 1997년 9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의회에 각각 진정서를 전달하기도 했으나 이도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99년 6월에는 ‘노근리사건’ 피해자들이 함께하는 ‘노근리양민학살사건대책위원회(이하 노근리사건대책위)’가 결성돼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999년 AP가 이에 대한 탐사보도를 발표하면서 ‘노근리사건’이 국제적 이슈로 부각됐다.

이후 한국과 미국 정부는 2001년 1월 12일 ‘노근리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계획을 발표, 15개월 동안 합동조사를 실시하고 ’노근리사건’은 미군에 의한 고의적인 민간인 살상행위가 아니라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불행한 비극이라고 결론 내렸다.

AP 통신이 1999년에 이어 29일 공개한 무초 대사가 러스크 차관보에게 보낸 서한은 ‘노근리사건’에 대한 미 정부의 은폐 가능성과 고의성 여부에 대한 논란에 또다시 불을 지폈다.

△‘노근리 사건’ 재점화, 주요쟁점은?무초 대사의 서한을 계기로 촉발된 ‘노근리사건’ 진상규명은 한국을 포함, 유엔 등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노근리사건’은 △의도성 △진실은폐 △한국 정부 개입여부 등이 논란의 소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국 정부의 당초 주장과 달리 ‘노근리사건’이 의도적이고 명령에 의한 행위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제사회에 몰고 올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피란민에 대한 살상행위는 전쟁관련 법률에서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라크 등 전쟁 과정에서의 미군에 의해 자행되는 민간인 등의 인권유린 문제가 국제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2001년 한미 합동조사단이 ‘노근리사건’을 공동 조사한 뒤 양측은 ‘의도성’과 ‘명령가능성’을 전면 부인했기 때문에 조사단은 이에 대한 책임 또한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운이 나쁜 비극’이라며 학살된 피란민에 대한 애도 표명과 함께 각종 지원을 약속하며 사건에 대한 논란이 종결되기를 희망한 바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피란민학살의 의도성 여부는 조사단의 진실은폐 의혹과 연관된다.

1999년 AP가 입수했다는 문건을 조사단이 진상 조사 과정에서 입수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고도 은폐했는지가 중요 쟁점이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조사단의 조사 기간이 15개월이나 되는 동안 이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은폐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계자 개입여부다.

무초 대사가 보낸 서한에 따르면 ‘노근리사건’ 발생 전날 사격방침을 결정했던 자리에 한국 정부의 내무부와 사회부 고위관계자, 경찰국장 등이 합석했었다.

이는 한국정부가 당시 피란민에 대한 미군의 총격을 사실상 승인한 것으로 해석되므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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