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하는 결혼식 풍경(3)
하루 종일 하는 결혼식 풍경(3)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1.05.19 2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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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낯설지만 매력 가득한 곳, 베트남(52)

결혼식 아침 둥근 해가 떴습니다. 아침 일곱시인데 벌써 꽃단장 다 하고 거실에서 서성거립니다. 일가 친척이 모입니다. 신랑 친구들이 옵니다. 끼리끼리 모여 담배도 꼬나물고 잡담도 하고 침도 찍찍 뱉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8시 반쯤 됐습니다. 꽃으로 치장한 자가용이 옵니다. 신랑이 탑니다. 뒤따르는 자가용과 승합차에는 친척들이 탑니다. 제단 앞에 진설해 놓은 폐백 음식을 친구들이 가지고 탑니다. 그리고 호찌민 시내를 비잉 돌아서 신부 집에 갑니다.

신부집 앞에는 풍선으로 아치를 만들고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았고, 신랑집에 차려 놓은 것과 비슷한 제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도 아침부터 복닥였던 모양입니다. 친척들은 갖가지 아오자이를 화려하게 만들어 입었고, 신부의 친구들은 노란 병아리 새끼들처럼 차려 입었습니다.

신랑이 들어가기 전에 신랑 친구들이 가져온 폐백 음식을 아오자이 입은 신부 친구들에게 인계합니다. 그 음식을 제단 앞에 진설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 따로 주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사가 사진 찍기 편하게 이쪽저쪽으로 자세를 잡으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합니다.

신랑 아버지가 신부 측에 지참금을 건넵니다. 신부 측 친척과 친구들이 축의금을 건넵니다. 신랑의 어머니가 신부에게 패물을 걸어 주고 달아 주고 끼워 줍니다. 그동안 신부 측에서 음료수와 간단한 빵을 대접합니다. 신부집에서의 대접은 그게 다입니다.

빵과 음료수. 남자가 많은 것을 부담한다고 한 말이 맞습니다. 신부집에서 볼일을 다 본 일행은 신랑 친구들이 신부 측에 건넸던 폐백 음식을 다시 되찾아 들고 신랑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신랑집에서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됩니다.

신랑 측과 신부 측 다 같이 몰려서 신랑집으로 갑니다. 열대의 태양은 뜨겁고 더워 죽겠는데 이리저리 자꾸 왔다 갔다 합니다.

신랑집으로 왔습니다. 신부는 신랑과 더불어 부엌에 모셔둔 성주신(?)에게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립니다. 아마 이 집 사람이 됐다는 신고인가 봅니다. 차려진 제단에다 아까 줬다 뺏어온 폐백 음식을 진설합니다. 그리고 사진사의 주도하에 사진 찍기가 이어집니다. 신랑 측 사람들이 축의금을 건넵니다. 출장 나온 잔치방 아저씨와 도우미 아줌마들은 부엌에서 음식 준비에 한창입니다.

절차가 끝났습니다. 먹을 일만 남았습니다. 출장 요리사들이 산해진미의 음식을 차려냅니다. 식탁 위에는 오늘 나올 점심 요리 메뉴가 적혀 있습니다. 다들 끼리끼리 앉아서 먹고 마시고 놉니다. 유심히 보니까 동네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초대를 안 했습니다. 그저 신랑 측 친구, 친척. 신부 측 친구, 친척들만 모여서 놉니다. 저 귀퉁이에 - 내가 매일 커피를 시켜다 먹는 노천 카페에 아줌마들 몇이 배고픈 척 앉아 있습니다.

하도 배고픈 척하기에 닭다리 한 접시 가져다 줬습니다. 아줌마들, 할머니들이 낄낄거리고 웃으며 잘 먹겠답니다 - 말은 전혀 안 통합니다. 다만 그 몸짓과 표정으로 알 뿐입니다. 내가 세상을 사는 방식입니다. 오후 1시쯤 되었습니다. 다들 돌아가고 이제 아주 친한 친척들만 몇 남았습니다. 아줌마가 그럽니다.

"한잠 자고 이제 저녁 때 예식장에서 보자."
에잉? 이 동네 결혼식은 하루 종일입니다. 이 더위에 지금도 지쳤는데 또 한다고? 아주 사람을 잡으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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