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마을 주민들의 '법대로' 타령
외암마을 주민들의 '법대로' 타령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05.18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사단법인 설립 허가는 우리가 했지만 실제적인 관리는 힘들다."(충남도) "우리가 국비를 마을보존회에 지급하지만 아산시가 맡아 집행했다."(문화재청) "모두들 우리에게 미루는데 우리라고 용뺄 재주 있나?"(아산시)

아산 외암민속마을 주민 내분 해결을 책임지고 나설 기관이 없다. 3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는 경사가 있었으나 마을 안을 들여다보면 기뻐할 처지가 아니다.

주민자치기구인 사단법인 외암민속마을보존회 회장직을 놓고 주민들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보존회가 설립된 건 2003년이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속마을의 원형을 보존하고 주민들 권익을 보호하려고 만들었다. 예안 이씨 집성촌으로 보존회장은 그들이 맡아 왔다. 2009년 2월 갑자기 이모 회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사였던 이준봉 전임회장이 이사회를 통해 선출됐다.

그가 올해 초 보존회장에 재선되면서 주민 갈등이 불거졌다. 일부 회원들이 뒤늦게 이 회장의 회원 자격을 들고 나섰다. 2009년 정관의 회원 자격을 확대해 개정했으나 충남도에 개정 절차를 안 밟아 개정 전 회원 자격이 유효하니, 이 회장은 회장은커녕 회원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법대로'하자는 것이었다.

회원 자격이 있는 주민들끼리 새 회장을 뽑았다. 첫 비(非)예안 이씨 출신이었다. 그러자 이 회장도 '법대로'를 들고 나섰다.

원래 회원 자격은 10년 이상 외암마을에 주민등록을 두고 살아 온 주민인데, 신임회장을 선출한 회원 중에 외암리에 실제 거주 않는 위장전입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산등기소 임원 등록이 무산됐다. 지난주 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가 또 소집됐다. 이 회장은 법원 등기된 회장(이 회장) 및 이사들이 소집하지 않아 총회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법대로'다.

보존회는 지금껏 총회를 열면서 회원 자격을 따지지 않았다고 한다. 소유자든 세입자든 가리지 않고 실제 거주 세대에 회원 권한을 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회원 자격이 문제가 됐다. 오순도순 살아가던 외암마을에 난데없는 '자격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이상기류가 마을에 퍼진 것은 팜스테이 사업 및 마을입장료 배분 등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 서운함이 생기면서부터다. 그 갈등이 확대된 것을 일각에선 곧 문을 열 먹을거리장터 저잣거리 운영권과 연관 짓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불화는 마을의 미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지정에 있어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인 주민들의 보전·관리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곳에 살면서 생활하는 주민들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유산 보호의 주체이며, 해당 유산의 진화적 가치를 가능케 하는 잣대란 것이다.

주민 갈등을 빨리 푸는 게 지상과제다. 기관들이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관련기관 중 애가 타는 곳은 아산시밖에 없다. 아산시와 시의회가 나서야 한다. 차제에 마을 내 특정 집단의 이익에 쏠리지 않고, 세계유산 등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보전협의체'를 만들자. 시 조례를 통해 보존회를 준(準)공공단체로 격상시켜 제도적으로 마을 공익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문가집단에선 자문회를 통해 도우면 된다.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2009년 시 조례를 통해 보전협의체를 만들었다. 회원 자격은 실거주 소유자 및 3년 이상 거주 세입자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