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소가 아이들 식탁에 올라갔다니
병든 소가 아이들 식탁에 올라갔다니
  • 한인섭 <사회부장>
  • 승인 2011.05.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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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밀도살된 병든 소가 일부 학교에 공급된 사실이 확인돼 축산물 유통 관리와 급식체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새삼 들여다 보게 했다. 청주지검이 괴산에 불법도축장을 차려놓고 병든 한우 등을 밀도살한 유통업자들을 수사하다 학교급식에 납품한 사실을 확인한 데다 대부분 결핵 등 인수공통전염병에 걸려 항생제 덩어리였던 점을 밝혀내 충격을 더했다.

10여년 전부터 구제역과 브루셀라 등 가축전염병 발생 빈도가 잦아 축산업체나 시골 축산농까지 방역과 축산물 관리·처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됐고,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됐을 것이라는 게 요즘 상식이다. 그러나 검역조차 없이 유통됐다는 점은 축산농은 물론 행정당국에 대한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지게 했다. 정상적이라면 항생제 잔류물질 검사 후 기준치를 초과하면 폐기처분하고, 전염병이나 기립불능 등 질병 상태라면 아예 매립해야 할 한우를 어떻게 학교에 공급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3년 전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먹을거리와 축산물에 대해서는 유난히 까다로워진 게 한국사회이다. 2008년 4월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 후 '미국 쇠고기는 광우병 소'라는 인식 탓에 촛불시위가 100일 넘게 진행됐다. 논란의 실체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광우병 파동은 국민건강과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꿔 놓았다.

이런 상황인데 정작 병든 소 밀도살과 학교급식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돈벌이에 혈안이 됐던 유통업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병든 소를 업자에게 팔아넘긴 축산농까지 함께 처벌해야 할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병든 소까지 유입이 가능했던 학교급식 식자재 관리체계이다.

검찰 수사 결과 괴산에서 밀도살된 병든 소가 청주를 비롯한 도내 상당수 학교에 공급돼 많게는 100여 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검찰 수사로 이번 일이 드러났지만, 나머지 식재료는 과연 안전한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충북도교육청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합동 또는 단독으로 식재료를 수거해 검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300여개교를 대상으로 물샐틈 없이 검사를 하기는 행정력이 한계일 수밖에 없다. 2008년 11월부터 쇠고기 이력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서류 확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번 경우처럼 유통업자가 도축증명서와 등급판정확인서를 위조할 경우 손쓸 방법은 더욱 없다. 납품 절차를 확인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품질을 확인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학교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크고 작은 업자들이 몰려 있는 납품 구조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러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학교급식 식자재 품질관리에 큰 하자를 드러낸 것만은 분명하다.

놀란 학부모들은 이번 일을 겪으며 최종 사용자인 일선학교마다 식자재와 학교급식을 검증할 체계를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며 축산당국과 교육당국의 허술한 관리를 질책한다. '문제가 쇠고기뿐이겠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물가 상승과 예산 문제로 학교급식이 예전 같지 않다는 아이들의 불평이 깔려 있던 상황이라 학부모들의 불신은 더 크다. 그래서 '전국 최초 무상급식'이라는 정책적 성과와 정치적 효과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차제에 충북도와 도교육청은 이번 일을 '일부 악덕업자의 몹쓸 짓'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학부모들의 인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급식용 식자재 생산부터 식탁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챙길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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