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바람!
  • 김송순 <동화작가>
  • 승인 2011.05.1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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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송순 <동화작가>

바람의 이름은 참 여러 가지다.

방향에 따라 다르고, 세기에 따라 각각 다르다. 그 중에서 동풍의 이름은 샛바람이며 서풍은 하늬바람, 남풍은 마파람이라 하며 북풍은 된바람이라 부르니 한글로 된 그 이름들이 참 정답기만 하다. 또한 바람의 세기에 따라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노대바람, 싹쓸바람으로 부르니 양팔을 뻗고 바람 이름만 듣고 있어도 손끝으로 바람세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세기에 따라 이름이 다르듯이 계절에 따라 부는 바람의 역할도 각각 다르다. 그 예로 어느 바람은 얼음을 얼게 하고, 어느 바람은 얼음을 녹게 한다. 또 어느 바람은 꽃을 피게 하고 어느 바람은 꽃을 지게 한다. 그렇게 자연 속에서 부는 바람이 세상을 변화 시키듯, 사람 마음속에 부는 바람도 바람을 맞이하는 사람의 꿈을 변화시키는 것 같다.

기억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 안에는 많은 바람들이 지나 갔다.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나 내 세계를 정립하고 싶어 하던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의 바람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인생이 뭐냐며 나홀로 고뇌하던 청춘의 바람들!

그 바람 속을 지나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는 나를 흔들어댈 더 이상의 바람은 없을 줄 알았다. 아니,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너무도 힘든 20대를 지나왔기에 30대는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편안히 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내 울타리 밖 세상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무풍지대 같은 내 뜨락에서 아이들의 엄마로만 사는 게 좋았다. 그러니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난 그럭저럭 행복해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길을 걷다 올려다본 '여성백일장'을 알리는 현수막 아래에서 난 아주 작은 바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바람의 세기는 꽃 이파리 하나 파르르 떨리게 할 만큼의 실바람이었기에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실바람은 나를 따라왔고, 며칠 동안 내 문밖을 맴돌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황소바람이 되어 내 문틈을 헤집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참으로 센 바람이었다. 아마 '싹쓸바람' 만큼이나 센 바람이었나보다. 그 바람들은 누워있던 내 젊은 날의 '문학'에 대한 열망들을 일으켜 세웠고, 내 마음을 달뜨게 만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나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긴 채 백일장 장소인 '3·1공원'으로 달려가고야 말았다. 아이들 엄마가 된 후 처음으로 혼자 나선 외출이기도 했다. 그 날, 나를 맞이해 주었던 '3·1공원'의 달큰한 아카시 향기!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마주했던 2백자 원고지!

그것들은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많은 것을 기억나게 해주었고, 내가 '동화작가'로 세상을 살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게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난 내 인생길 위에서 또 다른 바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 날의 바람처럼 나를 흔들어놓지는 못했다. 돌아오는 5월 21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3·1공원' 그 자리에서는 16년 전에 내가 만났던 그 바람이 또 분다. 그 바람 속에서 누군가 나처럼 달큰한 아카시 향기에 취할 것이고, 묻어 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되겠지.

그들과 만날 생각에 내 가슴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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