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색깔 무지개
일곱색깔 무지개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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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진순 <수필가>

소나기가 줄기차게 쏟아진다. 함석지붕 위로 발장구를 치며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는 낭랑하다. 온몸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팔뚝으로 쓱쓱 문지르다 어머니 생각에 목울대가 뻐근해 왔다.

논둑이 터질세라 물꼬 보러 삽 들고 들판을 겅중거리던 어머니. 마대자루 접어서 머리에 쓰고 몸뻬 바지 중중 걷어 올린 어머니는 비 오는 날도 바쁘기만 했었다. 지금처럼 비닐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긴다리 휘청거리며 삽짝을 들어서던 우리 어머니.

비 맞으며 캐온 감자나 고구마를 쪄서 배불리 먹여 주시던 어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논밭 두렁에서 사셨다. 어머니는 시계추처럼 집과 논밭을 밤이고 낮이고 왕래하며 세월을 엮었다.

청보리 싹 뾰족이 나올 때는 우리들과 보리밭을 밟았고 마늘잎이 병아리 주둥이처럼 내밀면 갈퀴 들고 아가 머리 빗기듯 마늘밭을 다듬었다. 비료가 흔치 않아서 인분 장군을 머리에 이고 나가는 날은 온종일 똥 냄새가 엄마를 따라 다녔다. 어머니가 걸머지고 다니던 종다리엔 씨앗과 비료 호미가 담겨 있었지, 거름내고 흙을 부숴 푸성귀 부치던 어머니 직장은 휴일이 없었다.

우리들 아침 먹여 학교 보내고 거름통 어깨 메고 밭에서 온종일 끝도 나지 않는 풀과의 전쟁을 했다. 해거름이면 오이, 고추, 토마토 푸성귀를 속아 대바구니 가득 가져 오셔서 반찬장만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시적삼에선 쉰 땀내가 났었지.

무섭기가 호랑이로 유명하셨던 엄마는 눈이 크고 키가 커서 전봇대란 별명을 가졌다. 우리엄마는 칭찬보다는 꾸짖음이 많아서 맏이인 날 늘 겁먹게 만들었다.

분꽃이 피면 난 부엌에서 보리쌀 닦아 밥을 짓고, 둘째는 방과 마루를 먼지하나 없도록 청소를 해야 했다. 막내는 마당비 들고 마당을 분이 나게 쓸어야 했는데 우린 매일같이 엄마한테 칭찬 들으려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했었다.

궂은 일 험한 일 가리지 않고 소 갈 데 말 갈 데 다 다니며 돈 벌어다 삼남매 가르치고 배불리 먹여 주시던 우리 엄마는 남자처럼 성격이 대쪽 같았다. 생계 잇기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친구들 학교 가는 꼴 부러워 뒷간에서 속울음 삼키다 들켰을 때 우리엄마 가슴 얼마나 미어졌을까.

돈이 생기면 쌀이며 밀가루를 사서 다락에 차곡차곡 쟁여 놓으며. 쌀과 땔감만 있으면 나머지는 해결된다고 하셨던 어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재산을 불리려면 땅을 사야 아무도 가져가질 못한다던 어머니 말씀, 어째서 귀 밖으로 들었던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뒤돌아보니 물거품처럼 사라져간 돈들이 나를 비아냥거린다.

운동을 잘해서 다람쥐란 별명을 가진 동생을 등대로 삼고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 그대로 넘겨주면 할 노릇 다한 것이라고 하셨다. 부지런함을 바탕에 깔고 근면과 성실 인내를 몸으로 실천하며 동동걸음 치며 살다 가신 어머니다. 얼마나 넘치는 사랑이었던지 아버지의 빈자리를 모르고 살았다.

한바탕 소나기 퍼붓더니 앞산 위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날보고 어서 오라 손�!磯�. 고운 무지개 사이로 어머니 얼굴 보일 것 같아 고개를 길게 빼고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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