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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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상옥 <수필가>
  • 승인 2011.05.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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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상옥 <수필가>

겨우내 냉랭하던 화단이 훈풍에 마음을 열고 있다.

입춘이 지나고도 황량한 바람과 차디찬 얼음을 품고 빗장을 걸었던 땅심(土心)은 어지간한 봄 햇살에도 무심할 뿐이었다. 워낙에 지독한 맹추위가 기세를 떨치던 지난 겨울날씨 탓에 자잘한 화초들이 꽤나 죽었을 거라 짐작하고 색 바랜 건초들과 삭정이로 뒤덮인 화단을 손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방치했었다.

사월을 맞으며 추위도 물러갔고 남녘에서 연방 꽃소식이 밀려오던 날, 화단을 살펴보니 황무지 같던 땅 여기저기서 새싹들이 삐죽삐죽 올라오는 게 보였다. 주어진 환경을 전혀 탓하지 않고 생명력을 발휘하는 잡초마저 봄을 맞는 전령사로 보여 반갑기 그지없었다.

고난의 시간들을 잘도 견딘 화초들이 신통하고 그동안 내박쳐둔 마음이 미안하여 묵은 떡잎들을 걷어냈더니 초록 싹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 강한 것이라는 말처럼 엄청난 추위를 견디어온 생명력들은 숱한 고비를 넘기며 이겨낸 자랑스러운 삶이리라.

살면서 힘든 고난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설 가능성은 어느 곳에서든 준비돼 있나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새로운 삶을 희망의 등불처럼 밝히며 기다리고 반길 것이고.

한 번의 용기가 어려웠듯이 화초들은 점점 포근해지는 봄 햇살에 기운을 얻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작년에 심어놓은 야생화 몇 포기를 비롯하여 상사화, 꽃잔디, 원추리까지 황량하던 화단을 며칠 만에 제법 초록의 빛깔로 물들여 가고 있다.

사람의 눈과 마음은 어디까지가 만족의 기준이 될까. 며칠 전에는 싹이 나오는 것만도 기특하던 쥐똥나무와 명자나무 새순이 두어 뼘씩은 자라나 사방으로 커가고 있는 것이 그새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우후죽순으로 커지는 모양새가 영 심란하여 다듬으려 전지가위를 들이대려다 보니 벌써 잎사귀 사이로 작은 꽃망울들이 송이송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잠깐의 망설임을 냉정하게 밀어내고 웃자란 가지들을 매정하게 잘라 단정하게 다듬었다. 지금의 연초록 여린 가지들은 얼마 후면 더 많은 햇살을 받고 무성하게 자랄 것이고 몇 송이 꽃을 더 보려는 욕심으로 남겨진 곁가지들이 답답하게 들어차 화단전체의 미관을 해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내 삶 속에서도 웃자란 사리사욕이 삶의 결과에서는 결국 삭정이가 되어 인생여정에 번복하지 못할 상처와 오점으로 남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살면서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하고 매달고 사는 미련이나 집착들로 휘청이던 삶들은 진취적인 도전 앞에서 결국은 소생하지 못하고 작은 바람에도 꺾여야만 했었다. 마음속에 매달고 사는 원망과 시기, 미움과 질투도 화목을 정리하듯이 어느 순간 과감하게 잘라 버릴 수 있는 냉철한 용기와 지혜가 내게도 있다면 겸손과 온유의 큰마음으로 다시 피어났으련만.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하리라. 작은 것 하나에 미련을 두고 허욕으로 뒤엉킨 현실을 끌어안고 간다면 밝은 미래에 무거운 짐이 되어 허리도 휘게 하리니.

생명의 기운은 겸손한 마음을 품을 때 역동적으로 흐른다 하지 않던가. 버려할 것들을 과감하게 잘라 버린 후의 꽃밭은 청초한 이슬을 머금고 푸르른 오월에는 소담한 꽃을 한가득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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