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5월은
  •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05.02 2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 자의 목소리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한 여인이 사는 마을에 기근이 왔다. 온 가족이 고민 끝에 마을을 떠나기로 중대한 결단을 했다. 자신과 남편, 그리고 두 아들은 그래도 좀 살 만한 곳이라 여겨지는 지역으로 가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는 불행을 맞는다. 그러나 이것은 고향을 등지고 사는 자가 겪는 불행의 서곡에 불과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도 타향이라는 곳이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데, 주거형태가 씨족중심이요 폐쇄된 문화의 고대 사회에서의 타향살이는 얼마나 긴장되고 서러운 것이었을까. 그런 타향에서 남편이 남겨둔 두 아들을 그 지역의 여인들에게 결혼을 시키고 한 십여년쯤 함께 살다가 두 아들이 차례로 죽는 불행을 맞는다. 두 이방의 며느리와 함께 삶의 최대 위기를 맞은 여인은 그 옛날 떠났던 고향에 다시금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귀향을 결정했다. 짐작건대 중년은 넘겼을 나이인 이 여인이 두 며느리에게는 그들의 고향에 머물 것을 강권하면서 자신이 홀로 그 먼 고향길을 갈 것을 결심한다.

이유는 단 하나, 자부들을 향한 지극한 애정 그것뿐이었다. 자신도 타향에서 많은 슬픔을 겪었거늘 웩?젊은 며느리들에게 그 타향살이를 또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울며불며 어머니와 함께하겠다는 룻이라 이름하는 효성 지극한 자부를 데리고 버렸던 고향에 다시 왔다. 두 과부가 할 일이 고작 추수하는 사람들의 밭에 가서 품꾼으로 일하든가 추수 뒤에 흘린 이삭을 줍는 일이었다. 두 여인의 불행이 서서히 그 가정에서 멀어지는 시간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 사랑 지극한 고부는 서로에게 지극한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며느리가 추수 밭에 나가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곡식을 구해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며느리의 젊음을 아까워하며 재혼의 기회를 찾아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여인의 따뜻한 사랑은 입에서 입으로 그 온 마을에 번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젊은 여인의 성실과 깊은 효심을 그 지역의 유력인사가 눈여겨보고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묘하게도 때마침 그 남성은 상처를 하고 홀로된 처지인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를 전해들은 어머니는 며느리를 재혼시킬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그 유력인사의 눈에 들도록 처신법을 일러준다. 인생의 노련미를 갖춘 어머니의 코치를 받은 며느리는 드디어 그 남성과 재혼에 이르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의 혼인법이 대부분 근친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방 여인과 유력인사와의 결혼은 이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근족이 바로 그 남성과 혈연적으로 연결된 것도 하늘의 뜻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사실이 있다. 이 이야기 속의 보아스라는 남성은 룻과 재혼하여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오벳은 이스라엘 역사 속의 최고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고, 또 다윗은 그 후 천여년 뒤에 탄생하신 예수님의 육신적인 조상이라는 점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인간의 혈통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사랑과 효성이 지극한 가족들의 핏줄을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사실이다.

매년 5월이 되면 한 번 더 새기게 되는 구약 성경 룻기에 나오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이다.

5월이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그리고 스승과 제자, 이런 '단어'가 아닌, '관계'들을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 그러나 아무리 많이 생각해 봐도 반복되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5월은 가정의 달이라기보다는 사랑의 달이라 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