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와 나눔의 실천
보시와 나눔의 실천
  • <풍주선원 덕일 주지 >
  • 승인 2011.04.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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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풍주선원 덕일 주지 >

여러분은 새것과 헌것 중에 무언가를 하나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 같은가요? 새것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고, 아니면 향수가 담겨 있는 옛것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옛것을 모아놓은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곳도 하나둘 생겨나고, 선인들이 들던 옛 음식이나 사찰 음식 또는 한옥이 아파트와 접목하기까지 하면서 삶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찾는 향수에 젖은 사람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자신은 묵은 것의 향수보다는 지저분하고 쾨쾨하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쫓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묵은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발전을 가로막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다 보면 전통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춘하추동의 계절적 변화나 인간사회의 발전적 변동이 없다면 보람이란 없을 것입니다. 그저 막막하고 단조로운 연속,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쓰디쓴 잔을 앞에 놓은 안쓰럽고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답게 싹터 올라오는 봄, 신록의 아름다움은 향기롭죠. 지천이 아카시아 향으로 물들어 온몸을 휘감아오는데도 싫지 않은 것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며, 또한 머물러 있지 않고 변화하는 속에서 오는 다름이 주는 그런 느낌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봄일 수만은 없겠죠. 여름이 있고 가을이 오고 겨울을 거쳐야 하는 것이 순리이고 이치이듯이, 가을을 맞고 겨울을 통해서 묵은 것을 다 털어 버릴 수 있을 때 향기로운 봄은 어느새 우리 마음속에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요.

'원망 속에 노여움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번민 속에 번민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탐욕 속에 탐욕 없으니 내 생은 이미 편안하여라.'

법구경 '안락품'에 나오는 일부분인데요.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행복론이 아닌 것이 없겠지만, 부처님께서는 다시 법구경 안락품에서 행복의 길을 떼어내어 설하고 계십니다. 원망과 번민과 탐욕, 이것은 실로 우리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때이고 먼지입니다.

부처님 말씀대로라면 바로 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불성(부처님마음)을 각자가 근기에 맞추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의 승리자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묘년辛卯年 4월 초파일에는 봉축 표어가 '함께하는 나눔 실천하는 수행' 이라고 하는데 우리 한글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소승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함께하면 고통이 작아지고 즐거움을 함께하면 커지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실천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시와 나눔의 실천으로 세상은 밝아지리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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