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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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3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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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가 나던 아이
지금도 초임 발령지였던 부강초등학교에서 만났던 그 아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진우(가명). 그 아이한테서는 꽃향기가 났다.

뽀얀 얼굴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 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손가락이 닳아져 있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애기같이 참 귀여웠다.

그런데 진우는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학습 부진아인데다 산만하고 도벽성까지 있는, 문제아로 낙인 찍혀 있는 아이였다.

글씨를 바르게 쓰지 못했고, 맞춤법도 많이 틀렸으며, 수업 중에는 집중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장난이나 치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에 바쁜, 정말 나의 첫 담임 아동으로서는 최악인 아이였다.

“진우야, 그만해라, 좀.”“진우야!”하루에도 진우라는 이름을 열 번도 넘게 불렀다.

제발 떠들지만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진우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진우가 너무 떠들어서 가슴에 ‘떠들지 맙시다’라는 문구를 써 붙였는데 몸이 아팠는지 점심시간부터 힘없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보건실로 보낸 뒤 수업이 끝난 후 보건실로 가 침대에 조그맣게 웅크린 채 누워있는 진우를 보았다.

이불을 살며시 들추는 순간 아이에게서 향긋한 꽃향기가 났다.

이마에 손을 대니 열이 많이 났고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으며, 추워서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열 때문에 나는 냄새 같았다.

그런 상태인데도 가슴에는 여전히 ‘떠들지 맙시다’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진우야, 이거 떼지 그랬어. 불편하게 왜 계속 달고 다녀.”“수업이 끝날 때까지 달고 있기로 선생님이랑 약속했잖아요. 그래서 달고 있었어요.”이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일단은 꾹 참고 진우의 가슴에 붙은 종이를 떼어낸 뒤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진우야, 아프지 마. 선생님, 슬프다.

”“네, 선생님. 이젠 괜찮아요.”그 후로 며칠 동안 진우는 많이 아팠고, 그런 진우를 나는 열심히 챙겨주었다.

아픈 뒤부터 진우는 조금씩 차분해졌다.

그리고 내가 저를 많이 좋아한다고 느꼈는지 나를 많이 따르기 시작했다.

진우를 곁에 두는 것이 좋아서 일부러 내 책상 정리와 칠판 정리를 시키곤 했다.

진우는 깨끗이 닦겠다며 일부러 손가락으로 구석구석을 후벼 닦기까지 하면서 환하게 웃곤했다.

다른 아이들 몰래 입에 살짝 사탕을 하나 물려주면서 조용히 하라고 손가락을 입에 대면 진우는 행복하게 싱긋 웃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면서 발표도 했고, 수학 문제를 가르쳐달라고 묻기도 했다.

미술 시간에는 내 얼굴을 그려주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예뻤지만 진우는 특별히 더 예뻤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받지 못하는 사랑을 내가 주고 싶었다.

추석 때 옷을 한 벌 사다 주었는데 내 앞에서 바로 갈아입고서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1년이 지난 후, 진우는 울면서 전학을 갔고, 어느덧 4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을 진우. 어딘가에 예쁜 꽃을 숨긴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꽃향기 물씬 났던 착하고 예쁜 아이, 진우.나는 사랑은 사랑으로 보답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준 사랑에 진우는 사랑으로 보답했고, 진우에게서 받은 사랑은 나의 교직생활을 행복하게 이끌어주었다.

내가 또다시 그런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숨겨진 이름 모를 꽃향기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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