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
  •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04.1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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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이근형 <포도원교회 담임목사>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버릇없이 자라던 한 소녀가 철도 자살을 기도했다. 그 사고로 오른쪽 손의 손가락 세 개만 남기고 두 다리와 왼쪽 팔을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지는 중상을 당했다. 자살 기도의 이유는, 응석을 받아주며 사랑해 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뜬 것. 그녀의 나이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우울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은 그때부터가 의미 있는 삶의 시작점이었다.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을 죽지 못하게 살려놓은 의료진과 주변을 향해 저주를 퍼부어대던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이 다가온 것이다. 일본에는 기독교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얼마 되지 않은 기독교인 청년 순회전도자를 만나게 됐다. 그녀는 그를 통해 생의 의미를 육적인 데서가 아닌 영적인 데서 찾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라, 또 다른 특별한 의미로도 다가와 주었다. 사지가 멀쩡하고 미남인 그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까지도 안겨주었다.

사랑을 통해 인생관을 새롭게 쓰기 시작한 그녀는 끈질긴 재활 훈련과 성경공부, 기도생활을 하며 또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둘은 그리고 부부가 되었다. 한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은 엄마를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딸을 갖게 했으며 실로 수많은 장애인뿐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과연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황홀함을 충분히 가르쳐 주고도 남음이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다하라 요네코 여사와 아키도시 목사의 러브스토리는 우리네 삶이 얼마나 큰 신비를 갖고 있는가를 웅변하고 있다.

2011년 들어서 지난 4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명꼴로 카이스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전국이 이 문제로 놀라워하는 이때에 또 한 분 카이스트의 교수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교수님의 경우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학생들의 경우를 들어보면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크나큰 아픔이 이해가 된다. 그토록 명민한 그들이 그토록 큰 우울에 잠길 정도의 압박감이라면 그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생각할수록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든다. 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기에 이런저런 회의다 대책이다를 뒤늦게라도 내놓고는 있지만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 대한민국의 수재로서 자부심을 갖고 어깨를 펴게 할 수 있을까

성경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집단적 우울이 있을 법한 때가 있었다. 모세가 죽었을 때였다. 모세라는 사람은 그 이름이 '물에서 건졌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그의 동족을 이집트의 학정에서 '건져내어' 시나이반도의 광야에서 40여년간을 리드한 절대적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때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는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가나안 땅으로 진입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 중요한 때에 그토록 절대적인 민족의 지도자를 잃었으니 그들의 상실감이 어떠했겠으며, 또한 가나안땅의 진입이라는 새로운 사명 앞에 얼마나 두려움이 컸었겠는가 바로 그때 모세의 대업을 이어받은 여호수아라는 지도자가 등장했다. 그에게 들려진 음성은 이것이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이 음성은 그 민족의 집단적 우울감과 슬픔, 두려움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공동체의 힘을 결집해 세계 최고의 민족공동체로 출발하는 첫걸음을 떼게 하였다. 그것은 실로 황홀한 출발이었다.

우리네 삶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저 막연하기만 한 때가 있기는 하다. 그때가 하늘을 바라볼 때다. 그때가 과연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고 할 수 있을 때이다. 살아 내기에 너무 힘겨워 죽음밖에는 더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의 동료들에게 지금 하늘을 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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