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문학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5.26 0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두산 정상에서 만난 북한문학의 최고봉
열이레 은쟁반 같은 밝은 달이 이깔나무 숲을 따라 오더니 백두산 정상까지 따라왔다.

개마고원, 백두산 정상을 가는 길은 평원이었다.

삼지연을 지나 갑산 도로를 달려 백두산 가는 길로 들어섰다.

신비로운 숲들이 고요하게 펼쳐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숲에는 조상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시애(李施愛) 1467년(세조 13년) ‘함경도 농민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민란을 진압한 청년 장군 남이(南怡)는 여진을 정벌하는 싸움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린 후 백두산과 두만강을 돌아본 후 남이 장군은 시조 두 수를 남겼다.

‘백두산의 숱한 돌 칼을 갈아 다하고/두만강의 푸른 물 말을 먹여 잦아졌네./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평정 못할진대/뒷날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일컬을까.’‘장검을 빼어 들고 백두산에 올라보니/대명천지에 성진(腥塵)이 잠겼어라./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쳐 볼까 허노라.’남이 장군은 공신에 봉해졌고, 27살에 나라의 군사권을 도맡는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빗자루 모양의 긴 꼬리가 달린 혜성을 보고 낡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펼 형상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다가 그가 지은 시조가 빌미가 되어 역적누명을 쓰고 아깝게 1468년 처형되었다.

이른바 ‘남이의 옥’이라는 반역음모를 다스린 유자광, 한명희, 신숙주, 정인지 들은 물론 공신이 되었다.

뜻을 펴보기도 전에 죽었다.

이런 사연을 안고 있는 백두산을 25인승 버스로 올라간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2005년 7월23일 나는 고은, 신경림, 백낙청, 염무웅, 황석영, 황지우, 도종환, 김승환, 배창환, 김용락 등 일행과 함께 올랐다.

해와 달이 만나는 백두산 정상에서 북측 최고의 소설가 벽초 홍명희(1888-1968년)의 손자 홍석중을 만났다.

그는 신?! 玲눗? 예의바른 사람이었으며, 나를 김 선생이라고 불렀다.

평양 고려호텔에서부터 그와 사진 찍고 대화를 나누는 일을 직접 했던 나는 그의 입을 통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당신이 쓴 ‘황진희’ 소설을 읽었다.

그것도 여럿이 함께 읽었다.

” 이 말을 하니 그는 감격하였다.

남쪽의 젊은 시인이 당신의 소설뿐만 아니라 판금의 소설을 군부독재 전두환 시절에 할아버지의 소설 ‘임꺽정’그 책을 읽었다고 하니 더욱 놀란다.

나는 그와 백두산에서 뜨겁게 포옹을 하였다.

백두산 정상에서 청주문화방송에서 빌려준 무비카메라로 백두산의 일출과 북측작가들 남쪽의 작가들을 촬영하는 일에 바쁘게 움직였다.

후에 남쪽을 꼭 오고 싶다고 한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는 2005년 8월 15일 서울에 왔다.

도종환은 그를 만났지만, 나는 간절히 그를 보기를 원했는데 만나지 못했다.

정도상에게 여러 번 연락을 취했는데 소설가 정도상은 나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쉬운 홍석중의 남쪽 행을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다.

그는 그렇게 돌아갔다.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장군봉 아래였다.

나는 백두산에 엎드려 입을 맞추었다.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이곳에 오기 위해 30년을 민주화운동을 하였다.

그 결과로 2000년 6·15공동선이라는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었고, 나는 나의 스승 서남동, 문익환, 안병무, 박현채 교수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백두산해맞이에서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詩)가 정지아 소설가의 음성으로 울려 퍼졌다.

‘통일문학의 새벽’이 열렸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의 작가들이 백두산에 올랐다.

홍석중은 백두산에서 웃었다.

그는 내가 남쪽의 청주기별 인터넷신문 기자라고 하니까 더 크게 웃었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부터 그의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어댔으니 말이다.

그는 나중에 나에게 말하기를 남쪽의 유명한 기자 선생인 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시인이라 했더니 통일을 위해서 멋진 시를 쓰라고 말했다.

나는 이미 그런 시를 백두산을 오는 비행기 안에서 썼다고 하였다.

‘백두산의 즉흥시-삼지연 선언’이라는 시였다.

그 시를 남쪽의 유력한 시 전문 문예지 ‘시경’에 실었다.

홍석중은 ‘황진이’라는 소설로 남쪽의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진 작가다.

그가 북쪽에서 인정받는 작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베개봉 호텔에서 만난 북쪽의 민화협 간부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다.

홍석중과 백두산에서 손을 잡고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고 웃었다.

할아버지의 고향에서 온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고, 평양에서는 더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백두산의 아침은 여느 아침과는 달랐다.

남쪽을 향해 바라보니 소백산과 그 준령들이 푸르게 넘실거리며 아름답게 꽃으로 수놓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