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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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효준 <광혜원성당 신부>
  • 승인 2011.03.2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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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정효준 <광혜원성당 신부>

드물지 않게 개인 면담을 청하는 신자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어떤 문제를 안고 있거나 마음의 아픔을 안고 있는 분들입니다. 사실 그분들은 어떤 해답을 원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원한다기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혹은 자신의 입장을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에게 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과 대화를 할 때 제가 항상 기억하는 말이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책에서 본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와 마주 앉은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을 만났습니까. 그 사람과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하며 동행했습니까. 그 사람과 하나 되는 기쁨을 느꼈습니까. 아니면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듯 겉도는 이야기로 불편함을 느꼈습니까. 분명한 것은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 가운데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셨을 겁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만들어진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타이틀, 심지어 별명까지도 모두 벗어 던지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생각해 보면 이런 순간들은 우리 삶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새로운 학교에 가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직장을 가지게 되면서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전에 있었던 자신의 나쁜 버릇이나 습성들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전에 알던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좋았던 모습들을 모방하면서 자신을 표현합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보다는 내가 어떻게 비쳐지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눈에 비쳐진 내 모습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달마야 놀자' 라는 영화 속에서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과제가 주어졌었습니다. 무작정 물을 채우려는 조직 폭력배 팀과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님 팀이 경합을 벌였지만 문제를 낸 주지 스님에게 해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조직 폭력배 팀의 리더인 박신양(극중 재규)이 밑빠진 독을 연못에 던져 그 안에 물을 채우는 기발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냅니다. 영화가 종반으로 갈 무렵 재규가 자신을 받아준 주지 스님께 그 이유를 묻습니다. 주지 스님은 대답했습니다."네가 밑빠진 독을 연못에 던진 것처럼 나도 너에게 나를 던졌다."

여러분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온전히 하나를 이루기 위해선 자신을 던지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던지기 전에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바로 나를 비우는 작업과 밑빠진 그릇이 되는 작업입니다. 밑빠진 독과 연못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독이 비어있었기 때문이고, 밑빠진 독이였기 때문입니다. 온전해서 속이 꽉 찬 독이 연못에 던져졌다면 그 독은 연못 위에 둥둥 뜨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던진다고 하면서도 밑을 깨는 개방을 거부하고 내 생각과 고집으로 꽉 찬 항아리를 던집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을 탓하곤 합니다.

내 마음의 한쪽을 깨는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깨어진 곳으로 내 선입견이 흘러 나가고, 내 생각이 흘러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고, 내가 지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만이 바로 상대방과 온전히 하나 되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기다리기보다는 한발 다가가고, 양보하기를 바라기보다는 내 것을 비우는 노력을, 다음 기회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나와 마주 앉은 이 사람에게 실천해 봅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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